[문화와 사람] 인도 출신 미술가 탈루

입력 2008-08-11 06:00:24

세계적 작가 대구에 '둥지'튼 이유는…

한국을 대표하는 갤러리 아라리오 전속 작가 탈루(Tallur L.N·37)는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인도 출신의 젊은 예술가다. 그는 세계 미술의 중심지 뉴욕에서 7월 8일부터 지난 2일까지 개인전을 가졌다. 전시 오픈전 6개 작품이 판매될 정도로 전시는 성공적이었다. 입맛 까다로운 뉴요커들과 웬만한 작가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는 세계 유명 미술품 애호가들의 시선을 잡은 셈이다. 지난해 2월 서울에서 가진 개인전에서는 작품이 '솔드 아웃(매진)' 됐다. 국내외에서 그의 지명도를 가늠해 보기에 충분한 성과다.

웬만큼 이름이 알려지면 짐을 싸서 서울로 가는 것이 지역 미술계 현실이다. 하지만 탈루는 대구에서 작품 활동을 한다. 서울이 아니라 대구를 선택한 이유는 사랑 때문이다. 인도에 유학 온 대구 여자를 만나 2002년 결혼한 그는 아내가 임신을 하자 2004년 처갓집이 있는 대구로 작업과 생의 중심지를 옮겨 버렸다. '지역적 한계가 걸림돌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가 하나로 묶여진 시대, 어디에 사는가는 문제 되지 않는다"며 대구를 떠날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탈루의 작품은 관람자에게 편안함을 주는 신사 같은 존재는 아니다. 생각하고 이해할 것을 요구하는 쪽이다. 그가 제시하는 기본 화두는 부조리와 불합리다. 진실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때론 진실이 아니듯, 생활에서 발견되는 사회적 모순을 작품을 통해 드러낸다. 현상 이면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무엇을 찾아 보여 주려는 작업의 연속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적 발견으로 꼽히는 아인슈타인 공식에서 명제를 따온 'E=mc²'는 에너지 문제에 대한 작가의 비판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젤리를 만드는 인도의 가내 공업이 몰락한 사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소수 거대 기업이 에너지 자원을 독점하고 투기 세력에 의해 원유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 지금의 현실을 질타한다.

유머와 풍자를 곁들여 현대 사회의 그늘을 거침 없이 파헤치는 작품 경향은 그의 고향에 원형질을 두고 있다. 탈루는 인도 남부 작은 해변 마을에서 태어났다. 기본적인 의료 시설조차 없는 곳이다. 가장 가까운 의료 시설이 50㎞ 떨어진 곳에 있다. 고향에 대한 기억은 고스란히 작품 속에 투영되고 있다. 뉴욕 전시에서 선보인 '유도분만(부제)'이라는 작품은 난산으로 고통 받고 있는 엄마를 상징한다. 부풀어 올랐다 꺼지는 거대한 풍선은 가쁜 숨을 몰아 쉬는 임산부의 배를 닮았다. 작가는 이 작품 판매 수익금 10만달러를 병원 건립 기금으로 고향에 쾌척했다.

그의 작품은 다른 작가들과 차별화된 시각적 신선함과 개념적 완전함으로 주목 받고 있다. 상투적인 의식을 비꼬며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특히 '기념품 제조기', '패닉 룸', '알츠하이머' 등 관객의 각성을 유발하는 재치 있는 제목들은 그의 작업을 다시 보게 한다.

탈루는 인도 미조르대학과 바로다대학에서 회화, 박물관학을 배운 뒤 영국 리즈대학에서 컨템포러리아트를 전공했다. 그리고 한국에 살고 있다. 동양 철학과 서구적 논리가 결합되어 강렬한 시각적 파장을 생성하고 작품에 다문화적 색채와 시각이 녹아 있는 이유다.

유럽에서도 전속 제의가 있었지만 그는 아라리오를 선택했다. 유럽은 보다 상업적이며 다양한 문화를 공유하기에는 유럽보다 아시아가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작가, 미술평론가, 독립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최규씨는 "대중들이 선호하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는 아니다. 그의 작품에는 글로벌 시각이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현재 탈루는 9월 중국 난징 트리니날레, 11월 이탈리아 아트페어, 내년 1월 인도 개인전을 열기 위해 인도와 대구를 오가며 작품을 준비 중이다. 그는 "라이프 스타일, 음식, 생각 등이 전혀 다른 두 문화권에 몸담고 있어 긴장감이 높아지고 타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 작품 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과 함께 "대구가 다양한 요구를 쉽게 수용하지 못하고 경제적 성장과 문화적 성장 사이에 큰 공백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아쉬움도 털어놨다.

작업 공간이 좁아 천장 높은 작업실을 구하고 있는 탈루는 언어 소통 때문에 대구 작가들과 만남을 많이 가지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있는 듯했다. 대구 사람들이 자신을 외국인 노동자로 생각할 것이라는 그에게 보다 많은 교류의 장이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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