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을 맞아 중국과 동남아를 찾는 여행객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해마다 이 맘때면 '보신관광' 논란도 끊이질 않는다. 몸에 좋다면 가리지 않는 보신 관광객들도 문제지만, 원치않는 '야생동물' 쇼핑에 끌려다녀야 하는 여행객들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한 여행에서 잔인한 '곰 쓸개즙' 채취 장면을 목격해야 하는 해외여행객들의 불만도 터져나온다.
◆야생동물 학대에 노출된 아이들
최근 휴가를 맞아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A(42·여)씨는 아직도 불쾌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가족들과 떠난 여행에서 살아있는 곰의 쓸개즙을 빼내는 잔인한 경험을 했기 때문. A씨가 베트남 하롱베이 관광을 마치고 현지 가이드의 손에 이끌려 찾은 곳은 곰 사육장. 입구에 들어서자 10여 개가 넘는 좁은 우리가 늘어서있고 우리마다 반달가슴곰이 갇혀있었다. 동물농원이려니 했던 생각도 잠시. 개 우리 만한 좁은 철창에 갇힌 곰들은 배설물을 쏟아내며 누워있거나 좁은 우리를 미친듯이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철창에 계속 머리를 부딪히기도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이상 행동을 보였던 것. 심지어 머리 부분의 털이 다 빠져 허옇게 살을 드러낸 곰들도 적지 않았다. 곰 우리를 뒤로 한 채 33㎡(10평) 남짓한 건물 안에 들어서자 판매원의 홍보가 이어졌다. 이곳은 다름 아닌 웅담 판매점이었다. 판매원은 마치 웅담이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듯 효능에 대해 떠벌렸다. 심지어 안경을 쓴 A씨의 아이에게 '3개월만 복용하면 안경을 벗어던질 수 있다'는 근거없는 얘기까지 늘어놨다. 여행객들의 반응이 신통치않자 판매원은 곰의 쓸개즙이 든 작은 앰플을 차와 술에 섞어 돌렸고 어른 뿐만 아니라 열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도 받아 마셨다고 했다.
충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진짜 웅담인지 증명해 보이겠다"며 살아있는 곰을 마취해 수레에 싣고 들어온 것. 판매원은 곰의 앞·뒷발과 가슴, 생식기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며 사람들에게 만져볼 것을 종용했다. 손길이 지나가자 베트남인 수의사가 초음파 기기로 담낭의 위치를 확인한 뒤 살아있는 곰의 복부에 천자를 하고 고무 튜브를 꽂았다. 고무호스를 타고 짙노란 쓸개즙이 흘러 나왔고, 뽑아낸 쓸개즙은 5cc 크기의 앰플에 나눠 포장됐다. 문제는 이 같은 잔인한 장면이 열살이 갓 넘은 초교생들한테 고스란히 노출됐다는 점이다. 결국 아이들은 곰의 쓸개즙을 마시고, 생식기를 만지기도 했으며 살아있는 곰에서 쓸개즙을 빼내는 장면까지 고스란히 목격한 셈이 됐다. 충격은 공항에서도 이어졌다. 공항 면세 코너에는 코브라가 담긴 뱀술이 크기 별로 진열돼 판매되고 있었다. A씨는 "가장 어이가 없었던 건 '이게 곰과 사람이 공존하는 길'이라는 판매원의 말이었다"며 "도대체 왜 원치도 않는 곰 사육장에 와서 아이들까지 충격적인 장면을 봐야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염 가능성 상존
불쾌함과 불법을 무릅쓰고 들여온 웅담은 정말 효능이 있을까. 한의학에서 웅담은 간염, 간경화 등 간질환이나 소화장애, 황달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웅담의 효능을 대치할 수 있는 다른 의약품이 많은데다 개별적으로 구입해 복용하는데는 안전성의 문제가 적지 않다는 게 한의사들의 얘기다. 운반 과정에서 상하거나 변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방재선 대구시 한의사회 홍보이사는 "특정 질환에 있어 웅담의 효능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인들이 비싼 돈을 들여 먹을만큼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며 "돈을 들인 만큼 판매상이나 현지 가이드만 좋은 일을 시키는 셈"이라고 말했다.
쓸개즙의 채취 과정에서 세균에 오염될 가능성도 있고, 곰이 간질환을 갖고 있을 경우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근우 경북대 수의과대 교수는 "야생 동물을 좁은 우리에 가뒀을 경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질병에 취약하게 된다"며 "곰이 특정 질환을 갖고 있더라도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한데다 채취 과정에서 오염될 수 있기 때문에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얼마나 적발될까
멸종 위기 야생동물인 곰은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의 국가 간 거래에 관한 협약(CITES협약)'에 따라 관련 상품의 수입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호랑이, 표범, 타조, 코브라 등 야생동물뿐만 아니라 웅담, 사향 등의 동물 한약과 목향, 구척, 천마 등 식물 한약도 반입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불법 동·식물 제품은 동남아나 중국 여행객들에게 쉽게 노출돼 있고, 입국 시 적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구세관에 따르면 올 들어 대구국제공항을 통해 들어온 입국여행자 중 불법 동물 제품은 6월말 현재 45건.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적발된 41건에 비해 다소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입국여행자가 지난해 7만9천966명에서 올해 7만3천480명으로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적발 비율은 더욱 높아진 셈. 대부분 쓸개즙이나 웅담가루, 웅담을 이용해 조제된 한약이었다.
그러나 적발된 건수보다 실제 반입량은 훨씬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입국여행자의 반입 금지 품목 여부는 수화물 엑스레이를 통해 가려내는 게 전부여서 다른 제품으로 위장해 검사를 피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대구세관 관계자는 "모든 여행객의 수화물을 일일이 열어서 검사할 수 없기 때문에 엑스레이 검사에 의존하게 되지만 이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 적발된다고 보면된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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