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빈층 삶 송두리째 무너진다

입력 2008-08-08 09:52:17

"최저생계비의 현실화는 불가능한가요."

장애인 박모(43·여·달서구 신당동)씨는 요즘 먹는 것까지 줄여가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가고 있다. 정부로부터 생계비와 장애수당을 합쳐 매달 받는 돈은 96만원. 그러나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4학년인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엔 빠듯한 살림이다.

7월 박씨의 가계부. 월세 5만원과 통신비 6만원, 공과금 10만원, 의료비 15만원. 식비 20만원, 여기에다 두 아이의 학원비로 40만원을 지출했다. 정확하게 96만원을 썼다. 가계부에는 저축·보험, 문화생활비, 옷값 등의 난도 있지만 빈공간으로 남겨져 있었다.

박씨는 "식비조차도 콩나물, 두부 등 싼것만 골라 끼니를 때우는 실정이지만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학원비까지 줄이지는 못하고 있다"며 "정부의 지원금이 조금만 더 나와도 살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최저생계비로 극빈층의 삶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부족한 정부지원금에다 올 들어서는 물가까지 천정부지로 치솟아 기초생활수급자와 장애인 등 최빈곤층은 삶을 버텨가기도 힘든 상황.

최저생계비는 기초생활보장뿐만 아니라 장애수당, 모자·부자가정지원, 보육료감면, 자활사업, 의료급여 등 거의 모든 복지정책의 선정기준으로 활용되는 지표다.

오는 9월 발표될 2009년 최저생계비의 인상폭은 3%선. 지난해 7월부터 1년 동안의 생활물가지수 증가율이 무려 7.13%에 달했고 심지어는 체감물가상승률이 20%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최저생계비 인상은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3년마다 실시되는 최저생계비 계측이 지난해 이미 이뤄졌으며, 올해는 그 금액에다 3%만을 인상해 지급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인 이모(43·경북 김천)씨는 벌써부터 올 겨울을 버틸 일에 걱정이 앞선다. 5명의 아이를 데리고 사는 이씨는 "난방비로 월 25만원가량을 사용했는데 유가가 엄청나게 오르지 않느냐"며 "생계비 지원액이 몇만원 늘어나는 걸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생활비는 더 이상 줄일 여지가 없으니 올 겨울을 생각하니 그저 막막할 뿐"이라고 했다.

최저생계비가 현실과 동떨어져 인상폭을 늘려야한다는 주장은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됐으나 유야무야됐다. 지난해 최저생계비는 4인 근로자가구 평균소득 대비 30%선까지 뚝 떨어져 빈곤을 악화시키고 있다.

1988년 4인 근로자가구 평균소득의 45% 수준이었던 최저생계비는 매년 갈수록 떨어져 2004년 31.9%, 2008년에는 30.8%까지 하락했다. 이는 세계은행이 제시하는 '상대빈곤선'인 평균소득 50%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으로, 우리나라 경제수준에 못 미친다.

빈곤사회연대 최예륜 사무국장은 "예산을 정해놓고 여기에다 짜맞추기 식으로 인상폭을 결정하다 보니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이 겉돌고 있다"며 "3년에 한번씩 최저생계비를 정하는 현행 방식과는 달리 국민 평균 소득의 40% 이하를 극빈층으로 정하는 상대빈곤선 방식을 도입해 지원액과 범위를 넓히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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