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덕유산

입력 2008-08-07 12:59:16

1등(一等)만 기억하고 추켜세우는 게 요즘의 세태다. 하지만 1등이 아닌 2등이나 3등, 더 나아가 꼴찌에게도 우리는 주목을 하고 박수를 보내야 한다. 인간들이 등수를 매기는 데 동원하는 잣대는 고작 1,2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 등수를 매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1등이 갖지 못한 또 다른 특장을 2등이나 3등, 꼴찌들이 갖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같은 생각은 자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상당수 사람들은 '어느 산이라고 하면 어느 계곡'하는 식으로 등식화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1등만 기억하고 추켜세우는 그릇된 세태 탓이다. 비록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숨겨진 비경들이 너무도 많다. 덕유산에 있는 칠연계곡도 이런 연유로 우리가 주목을 하고 관심을 가져볼만한 대상이다.

베풂의 미덕을 간직한 덕유산!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산그림자들의 은근한 아름다움

우리나라 12대 명산 중 하나인 덕유산. 높이 1천614m의 향적봉을 주봉으로 삼아 전북 무주와 장수, 경남 함양과 거창 등 4개군에 걸쳐 넓게 자리잡고 있다. 덕이 많고 너그러운 산이라 해서 덕유산(德裕山)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붙었다.

사람들이 덕유산에 오르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산그림자. 맨 앞의 산은 어둡고 진하며 차례차례 한걸음씩 물러난 산릉들은 은근한 농담차이로 그 옛날 우리 선조들 그림 속 그대로의 풍경을 선사한다. 또 덕유산은 그 이름처럼 넉넉하고 너그럽다. 적상산 향로봉에서 피운 향이 남으로 흘러 덕유산 최고봉 향적봉에 쌓이고, 이 향기를 맡은 신선이 민중의 염원을 들어줬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전화를 피해 산으로 숨은 사람들은 왜병이 지날 때마다 산에 안개가 끼어 목숨을 건졌고, 이를 계기로 '광여'라는 원래 이름 대신 '덕유'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모두가 베풂의 미덕을 간직한 덕유산을 칭송하는 덕담들이다.

구천동에 버금가는 칠연계곡.

한 줄로 이어지는 일곱개의 연못과 일곱개의 폭포

무주 구천동이 덕유산을 대표하는 계곡이지만 그에 못지 않은 계곡이 덕유산 남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바로 무주군 안성면에 있는 칠연계곡. 한 줄로 이어지는 일곱 연못 사이에 자리한 일곱 폭포, 7폭(瀑)7연(淵)의 절경이 펼쳐진다고 해서 칠연계곡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얻었다.

칠연계곡을 오르는 산행은 옛 매표소 자리인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한다. 계곡을 오르는 동안 산굽이를 여울져 흐르는 계곡의 물이 토해내는 물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그 시원한 소리와 함께 맑은 물 덕분에 더위를 느낄 겨를이 없다. 계곡을 왼쪽에 두고 오르는 완만한 등산로에는 숲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매표소를 지나 10여분을 오르자 문덕소가 나타난다. 칠연폭포로 향하는 길에 제일 먼저 만나는 비경. 제법 규모가 크고 깊은 못은 짙은 녹색을 띠고, 너른 반석 위를 지난 물이 세차게 아래로 쏟아져 내린다. 하얀 포말이 싱그럽기 그지없다.

탐방지원센터에서 1.2km를 오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나무다리를 건너면 동엽령과 중봉을 거쳐 향적봉에 이르는 산행코스. 나무계단을 오르는 오른쪽 길로 들어서야 칠연폭포를 만날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넉넉잡아 왕복 30분이면 족하다. 숲길에 가려진 폭포는 표지판이 없다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수줍은 새색시처럼 원시림 사이에 숨어 보일 듯 말 듯 이어져 내리는 폭포의 자태가 제법 운치있고 여유롭다. 그 이름처럼 '칠폭칠소(七瀑七沼)'의 모양새다. 계곡의 맑은 바람이 여기까지 온 수고를 덜어준다. 폭포수는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심산유곡의 반석 위로 흐르는 물줄기가 울창한 울창한 소나무 숲과 기암괴석 사이를 헤집으며 시원스레 뻗어나가니 여름은 칠연의 유혹 앞에 무릎을 꿇는다.

칠연의총과 용추폭포.

의병장 신명선과 의병 150여명 묻혀

안성탐방지원센터 부근 칠연계곡 건너편에는 칠연의총(七淵義塚)이 있다. 조선 말기 일본군과 싸우다 숨진 의병장 신명선과 의병 150여명이 묻힌 곳. 신명선이 이끄는 의병부대는 1907년에 거병해 무주와 진안 등지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격파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토벌대의 추격을 받아 이곳 칠연계곡에서 머물던 중 일본군의 기습으로 의병 150여명이 옥쇄(玉碎)하고 말았다는 것. 남은 의병과 인근 주민들이 유해를 수습해 봉분을 만들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의병들의 충혼이 가슴에 와닿는다.

전국적으로 '용추'란 이름의 폭포가 많은데 칠연계곡을 가는 길에도 용추폭포가 있다. 용추폭포는 칠연계곡 가는 길에 가장 먼저 접하는 명소인 셈. 높이 5m의 암벽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가 마음에 긴 여운을 남긴다. 또 울창한 노송에 둘러싸여 있는 아담한 '사탄정'이라는 정자가 옆에 세워져 있다. 문의 무주군청 문화관광과 063)320-2546.

덕유산 칠연폭포 가는 길

대구에서 덕유산 칠연폭포를 가려면 88올림픽고속도로와 통영~대전간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게 가장 편리하다. 김천 또는 거창을 거치는 국도나 경부고속도로를 탈 수도 있지만 88고속도로와 통영~대전간 고속국도를 이용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광주로 가는 88고속도로 함양분기점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가다가 덕유산나들목에서 내리면 된다. 덕유산나들목에서 칠연계곡 산행의 기점인 안성탐방지원센터까지는 20여분이면 충분하다. 대구에서 안성탐방지원센터까지는 2시간 남짓 거리. 하루만 시간을 내면 칠연계곡과 덕유산의 아름다움을 흠뻑 느낄 수 있다.

먹을거리

담백한 오리에 푸짐한 산나물 '덕유정'

봄이면 철쭉, 겨울이면 상고대 구경 등으로 덕유산은 사계절 내내 인파로 넘쳐난다. 그 덕분에 덕유산 곳곳에는 이름난 먹거리와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칠연계곡에도 손꼽을 만한 식당들이 많다. 덕유산에서 그 이름을 따온 덕유정도 그 가운데 하나다.

용추폭포 건너편에 위치한 덕유정(063-323-2333)을 찾기란 매우 쉽다. 오리훈제를 시켰더니 먼저 산나물 등으로 만든 푸짐한 반찬이 상에 올라온다. 맵지도 짜지도 않은 간간한 맛이 일품이다. 오리는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고 담백한 것이 특징. 궁중요리인 구절판처럼 양파 등 채썬 채소를 오리와 함께 상추에 싸먹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더덕 향이 진하게 배인 동동주도 그만이다. 인심좋은 주인 아주머니의 서비스 덕분에 단골손님도 많다는 것. 내부가 넓고 주차시설이 넉넉해 단체도 이용하기에 편하다. 오리훈제(대) 3만5천원, 생오리한방백숙 3만5천원, 산채비빔밥 6천원.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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