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털구름을 몰고 선녀가 가고 있다
키 작은 선녀는 눈이 부어서
세상의 슬픔을 함께 않는다
슬픔의 한쪽은 그러나 선녀에게 있다
양털구름을 몰고 가는 선녀의 천의 자락이 눈자위에 서늘한 한낮. 선녀의 키가 크든 작든 사람들은 개의치 않지만, 시인은 그 맹점을 가슴에 찍습니다. '키 작은 선녀의 부은 눈'이 주는 온전히 새롭고 낯선 이미지 때문이지요.
그런데 선녀는 왜 눈이 부었을까요? 세상의 슬픔을 다 보아 버려서? 아니면 너무 울어서? 천상의 존재인 선녀와 세상의 슬픔이 미묘하게 겹칩니다. 그러면서 빚어내는 모호한 심상들이 시의를 한층 깊게 합니다. 애당초 자유시로 썼으되, 이 작품은 중장이 길어진 엇시조입니다. 슬픔의 한쪽을 선녀한테 슬쩍 밀어놓는 종장에서 반전의 묘미를 얻습니다.
태양인의 아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살아 생전부터 우리 시대 마지막 기인으로 불리던 시인. 기인이 사라진 시대, 때로 불 같고 바람 같고 마른 백양이 타는 아궁이 같던 시인의 풍모가 새삼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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