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업무·문화 어우러진 '도쿄 속 도쿄' 록본기힐즈

입력 2008-08-04 08:34:13

[동성로에서 길을 묻다] ⑥선진도시에서 배운다-도쿄

▲ 일본 록본기힐즈는 주거 업무 유통 문화 시설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 일본 록본기힐즈는 주거 업무 유통 문화 시설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도쿄 속의 도쿄' '도시 속의 문화도시'로 각광받으면서 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록본기힐즈의 모형 및 밤 풍경.

일본에서 사용되는 '힐즈족'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성공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도쿄 미나토구의 록본기힐즈 내 맨션에 입주해 있는 젊은 IT 관련 기업의 오너와 경영자, 벤처기업가 등을 지칭한다. 때로는 성공한 벼락부자들만 지칭하기엔 너무 범위가 작아서 록본기힐즈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거나,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도 포함시켜 넓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신조어를 만들어 낼 만큼 주목을 받고 있는 록본기힐즈는 불과 5년여 전만 해도 아카사카, 아오야마와 함께 도쿄 도심의 트라이앵글을 이루는 록본기 지역의 조그만 언덕에 불과했다. 소규모 주택들이 산재해 있고, 길은 미로처럼 얽혀 있어 소방차나 구급차조차 들어갈 수 없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록본기힐즈는 도쿄시민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명소로까지 부상했다.

대지면적 11만2천200㎡(3만4천평), 건축면적 72만6천㎡(22만평)의 록본기힐즈가 단순 복합단지가 아니라 '도쿄 속의 도쿄' '도시 속의 문화도시'로 각광받는 이유는 주거·업무·유통·문화 시설들이 모두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록본기힐즈는 직장과 주거지, 극장과 쇼핑가, 레스토랑 같은 일상적 공간은 물론이고 작은 연못이 있는 17세기 전통식 일본풍 정원과 사찰까지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다. 54층 오피스 빌딩인 모리타워와 21층 특급호텔 그랜드 하얏트 도쿄, 최고 43층의 고급 아파트 4개동(840가구)을 주축으로 아사히 TV 방송국과 야외스튜디오, 9개의 대형스크린을 갖춘 영화관, 120개 점포의 고급 쇼핑몰, 젊음의 광장인 '할리우드 뷰티 플라자' 등을 포괄하고 있다.

특히 모리타워는 ▷세계의 현대 예술을 중심으로 패션·건축·디자인·사진·영상을 소개하는 모리미술관(53층)과 ▷도쿄시티뷰(52층·상점과 카페가 함께 있는 복합형 전망시설) ▷패션·영화 등 친숙한 테마부터 역사적인 명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전람회를 개최하는 모리아트센터갤러리(52층)에 주요 층을 할애했다. 또 모리타워 40층과 49층에는 회원제 도서관과 인텔리전트 스쿨, 세미나·포럼 시설을 갖춰 도심생활자의 지적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대구경북연구원 김성애 연구원은 "록본기힐즈의 복합재개발로 끌어들인 유동인구를 주변 상권 활성화에 적극 활용하기 위해 록본기상가진흥조합이 주축이 돼 '예술산보'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이 인상적"이라면서 "문화는 그 자체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촉매로서도 큰 기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록본기힐즈 재개발이 간단했던 것은 아니다. 1986년 첫 논의가 시작된 이후 용지수용 9년, 콘셉트 수립 5년, 건축 3년 등 17년이 소요됐다. 아시히TV 직원들은 1986년 재개발유도지구로 지정되면서부터 주민들을 찾아 설득에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1990년 조합이 발족되고 1995년 도시계획결정이 고시되자 곧바로 기본계획 설계도가 나올 정도로 도쿄도의 준비도 철저했다.

일본 최대 부동산 개발회사 모리빌딩의 모리 미노루 회장이 사업비용(약 3조1천억원)과 설계 시공을 책임지고 주도적으로 나선 것도 사업을 성공시키는 데 큰 보탬이 됐다.

안내를 맡았던 손민형(36·도시경영학 전공)씨는 "주거지역(630%)과 업무시설(840%)의 용적률을 크게 높이면서도 녹지공간을 위해 6만8천그루의 나무를 심고 논도 만들었으며, 400년 된 막부시대 무사정원도 살려 공원을 극대화한 것이 눈길을 끈다"면서 "록본기힐즈의 성공은 걸어서 10분 정도에 갈 수 있는 미드타운 재개발(2007년 3월 준공)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록본기힐즈 재개발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상황과 대조적이었던 것은, 주민 400여 가구 중 90%가 거품(버블)으로 땅값을 올리는 것에 반대하며 "이대로 단독주택에 살겠다"고 고집했던 점이다.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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