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무작정 달아나고 싶다. 아스팔트와 회색 콘크리트 도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숨이 턱밑까지 막힐 때면 아무도 가지 않은 깊은 산골짝 계곡물이 그리워진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울창한 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듯싶다. 허기라도 지면 그냥 맑디맑은 계곡물 한 모금으로 배를 채우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도 좋을 듯하다.
예천 명봉사와 명봉사 계곡, 인근에 잘 조성된 효공원과 곤충연구소 등에서 여름나기를 권해본다.
중앙고속도로 예천나들목에서 내려 927번 지방도를 따라 예천 상리면사무소를 1㎞쯤 지나 맞닥뜨리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난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명봉사와 계곡에 다다른다. 소백산 자락 품에 안긴 명봉사는 신라 헌강왕 원년(875)에 두운대사가 창건했다. 고려 태조 24년 세운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유형문화재 3호)와 문종대왕태실비(유형문화재 197호) 등 문화재들이 있다. 이곳은 거창하거나 볼품있는 건축물들로 가득 찬 여느 사찰과 달리 산사의 고즈넉한 여유와 기나긴 세월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역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명봉사 앞으로 길게 물길이 난 해발 1,400여m 소백산 백운봉 아래 명봉계곡은 심산유곡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피서지로 손색이 없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아 찾는 이가 많지 않았으나 이젠 제법 속인들의 발길이 잦다.
명봉계곡은 숲이 울창하고 계곡물이 맑으며 고즈넉하기 그지없는 자연 그대로의 산수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울창한 나무숲이 한여름 뙤약볕을 막아주며, 계곡물은 바닥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고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계곡을 따라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천연림이 무성하다. 소나무 전나무 느티나무 등 큰 나무들이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고 있어 한여름에도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추위를 느낄 정도다. 자연석과 낮은 폭포에 부딪히며 떨어지는 계곡 물소리가 사찰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와 어울려 청아한 느낌으로 속세를 떠나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계곡은 모두 명봉사 경내로 사찰 유원지라 할 수 있다. 내원암에 이르는 3㎞ 길 양 옆으로 연륜을 헤아릴 수 없는 아름드리 잡목이 천년의 풍상을 가지마다 간직한 채 하늘을 찌를 듯이 늘어서 있다. 그 밑을 흐르는 계곡은 백운봉 정상에서 출발해 세월의 풍상을 잊은 채 시원하게 흘러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고 있다.
내원암에서 맞는 일출은 장관이다. 계곡에서 피어오른 아침 물안개 속에 멀리 붉은 태양이 산을 돌아 떠오르면 사람들의 가슴은 절로 둥당둥당 요동친다.
계곡의 시원함과 천연림의 산림욕, 천년고찰의 거대한 감동을 한묶음으로 느낄 수 있는 명봉사를 체험했다면 이젠 함께 온 아이들에게 효의 의미를 되새기고 신기한 곤충을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러 떠나자.
명봉사 인근 상리면 용두리에는 조선 철종 때 사람으로 노모를 극진히 봉양해 '명심보감 효행편'에 이야기가 수록된 효자 도시복의 생가와 효공원이 잘 조성돼 있다. 상리면 고향리에는 신기한 곤충을 직접 만지고 볼 수 있는 '곤충연구소'가 있다. 이곳에서는 10일부터 일주일 동안 '여름방학 곤충 이벤트'가 열린다.
◆여행정보=예천에서 2시간마다 명봉사 계곡으로 가는 버스가 운행된다. 인근에는 산장식당(054-653-1360)과 하회탈식당(054-653-1399) 등이 있다. 민박도 가능하다.
글·사진 예천·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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