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지는 CEO…경영 새바람 주목

입력 2008-04-30 09:04:36

지역 100대 기업 2010년부터 2,3세 경영 본격화

▲ 지역 주요 기업들의 창업주가 고령화되면서 2세에게 경영을 물려주거나 2세 경영인들도 체계적인 경영수업을 시켜가며 3세들에게 경영권을 승계시키고 있다. 지난 24일 열린 대구상의 주최
▲ 지역 주요 기업들의 창업주가 고령화되면서 2세에게 경영을 물려주거나 2세 경영인들도 체계적인 경영수업을 시켜가며 3세들에게 경영권을 승계시키고 있다. 지난 24일 열린 대구상의 주최 '차세대 CEO포럼'에 참가한 2,3세 경영인들. 왼쪽부터 공민규 (주)공성 상무, 이영호 조일알미늄 대표, 박창현 태광공업사 대표, 류호청 류림산업 총괄팀장, 김진호 창진물류 부사장, 조민성 동영염직 사장, 전창건 신고려 대표, 이인호 경북광유 기획실장, 이종엽 대아알미늄 대표, 서창민 신도하이텍 과장, 남병학 보국웰리치 이사.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다음은 우리 차례입니다."

지역에서도 2,3세 경영인이 뛰고 있다. 2,3세들은 '맨주먹 붉은 피'로 회사를 창업하고 성장시켜 온 창업자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들은 젊은 감각과 체계적인 경영수업을 받고 경영 일선에 등장하고 있다.

이미 대표는 아니더라도 상당수가 주요 포스트에 오르고 있고 사실상 경영을 맡고 있는 3세 경영인도 많다. 하지만 아직은 전문경영인이나 부친인 창업자의 그늘 속에서 조심스럽기도 하다.

보수적으로 소문난 지역 업계에서 경영을 물려받고 있는 2·3세들. '수성(守成)'은 기본이고 '칭기즈칸'식의 공격경영으로 지역 업계 분위기를 변화시켜 나갈지 주목된다.

◆차세대 CEO 사관학교 '떴다'

지난 24일 저녁 인터불고호텔. 차세대 2,3세 CEO 43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45세 이하로 대표를 맡고 있는 창업 2세 10명을 비롯해 창업주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33명이었다. 최근 들어 창업주의 고령화 등으로 경영승계가 본격화되면서 대구상공회의소가 차세대 CEO들에게 신경영기법과 고급경영정보를 제공, CEO 자질을 키우고 지역경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리딩그룹으로 만들기 위해 마련한 '차세대 CEO포럼'. 대구상의는 앞으로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을 초청, 이들에게 경영노하우를 전수케 할 예정이다. 차세대 CEO들은 이날 김범일 대구시장으로부터 '대구경제의 글로벌 비전'에 대한 특강을 듣고 지역을 넘어 글로벌 CEO로의 성장을 다짐했다.

2,3세 CEO들의 특징은 '현장'에서 커 온 창업주와 달리 부친으로부터 체계적인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는 점. 대부분 국내 대학에서 경영관련 전공을 했거나 기업의 업종과 관계 있는 전공을 하고 해외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대구상의 임경호 조사홍보부장은 "차세대 CEO포럼은 미래 최고경영진을 위한 CEO 사관학교 역할을 할 것"이라며 "급변하는 외부환경에 대한 분석과 이에 대한 신속한 대응, 핵심역량의 활용을 통한 미래가치 창출 등 2, 3세 CEO들에게 필요한 전략경영을 전수하겠다"고 말했다.

◆3세 CEO들 누가 뛰나

3세 경영인의 선두는 경북광유 박윤경(여·50)대표. 박 대표는 올해 창립 81주년을 맞는 회사를 지난 1999년부터 이끌고 있다. 박 대표는 경북광유의 창업주인 고 박재관 회장의 손녀이자 고 박진희 회장의 딸. 특히 박 대표의 아들 이인호(26)씨도 기획실장을 맡고 있어 4세 경영인이 나올 날도 머지 않았다.

조일알미늄도 2004년부터 3세 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창업주인 고 이태희 회장과 아들 이재섭 회장에 이어 손자인 이영호(42) 사장이 조일알미늄의 경영을 맡고 있다. 이 사장은 미국 뉴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이사로 입사한 뒤 경영수업을 했다.

대구경북지역 최대 차부품업체 가운데 하나인 에스엘도 이달 3세 경영체제로 들어섰다. 에스엘(옛 삼립산업)은 이충곤 회장의 큰아들인 이성엽(37)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승진시켰고, 둘째 아들인 이승훈 상무도 전무로 승진했다. 에스엘은 지난 1954년 이충곤 회장의 선친인 고 이해준 명예회장이 설립했으며, 이충곤 회장은 30대에 경영권을 승계받아 현재 계열사가 20개에 이르는 지역제조업의 중심축으로 성장시켰다.

화성산업(주)도 이인중 회장의 아들인 이종원 상무(동아백화점 영업본부장)를 등기이사로 선임, 후계구도를 공식화하며 사실상 '3세 경영체제로 들어섰다. 지난 1998년 동아백화점에 입사한 이 상무는 이윤석 명예회장과 이인중 회장에 이어 3세 경영인의 맥을 잇고 있다. 이 상무는 경북대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대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송상수 대구상의 전무는 "지역 기업들이 2세에 이어 3세로 세대교체가 활발하다."면서 "대부분 해외유학파인 이들 3세들은 기업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창업주 고령화 2010년 본격 '대물림'

대구상의 상공회비 납부기준 100대기업(지점법인 및 타지역 본사기업 제외) 56개사와 30명 이상을 고용하면서 30년 넘게 생존한 기업 이른바 '3030'기업 44개사 등 100개 주요 지역 기업을 대상으로 대구상의와 매일신문이 함께 한 경영진 '세대' 조사에서 1세대가 CEO인 기업은 55개사, 2세대 기업은 41개사, 3세대 기업은 4개사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 기업 가운데 50여개사가 2,3세들에게 경영수업을 시키고 있는데다 이들이 대부분 부장급에서 기획실장, 전무 등 주요 포스트에 포진해 2, 3년 내에 경영승계가 대대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전문경영인을 함께 두고 아들에게 경영수업을 시키는 기업도 10여개사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의 창업주가 CEO인 기업도 30여개사에 이르는 것도 경영승계를 가속화하는 요인. 이들 고령의 회사대표들이 경영승계를 하지 않고 있는 데는 나름의 이유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염색공단의 한 기업인은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지만 기업여건이 어려운데다 상속세가 최대 50%에 이르러 아들에게 물려줄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창업주 경영승계 방식도 각양각색

2세 경영인인 태창철강 유재성 회장은 회사내에 친·혈족을 일절 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계열사까지도 친인척을 두지 않고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자율경영을 하고 있다. 반면 대구에서 잘 알려진 한 기업은 아들은 물론 동생, 조카까지 총동원 '족벌경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익THK 진영환 회장은 조카에게 경영수업을 시키고 있는 경우이고 아들이 없는 염색공단의 한 기업인은 사위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윤석 화성산업 명예회장과 민병오 조양모방(주) 회장은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 주었지만 날마다 회사로 출근, 회의에 참석하고 경영자문을 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이춘수기자 zap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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