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메멘토 모리

입력 2008-04-28 09:27:50

늦깎이로 클래식 음악 세계에 입문한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은 종교 음악이다. 중세 유럽 수도원에서 불리던 그레고리안 성가를 비롯하여, 가톨릭 미사곡, 러시아 정교회 성가, 바흐의 칸타타, 아르헨티나의 작곡가인 아리엘 라미레즈의 '미사 크리올라', 그리고 현대 음악가인 존 루터의 종교 음악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지역과 종파(宗派)를 초월하여 모든 종교 음악을 좋아한다. 그리고 부활절을 앞둔 성주간에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과 쿠프랭의 '르송 드 테네브레'를 듣는 등 가톨릭 교회력에 따라 그때그때 어울리는 음악을 듣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종교 음악을 즐겨 듣는 나는 가톨릭 신자도 아니요 기독교 신자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종교가 지닌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면을 은근히 비판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어울리지 않게 종교 음악에 심취하다니?

내가 종교 음악을 즐겨 듣는 이유는 신앙과 무관하게 이 음악이 나의 마음을 경건하고 겸손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 음악 중에서도 레퀴엠(Requiem)을 가장 좋아한다. 레퀴엠은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미사에 사용되는 가톨릭 전례 음악인데, 우리말로는 진혼곡(鎭魂曲)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누가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죽음이야말로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인생의 마지막 코스가 아닌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조금이라도 뒤로 미루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은 참으로 공평하게 그 누구에게나 언젠가 한 번은 꼭 찾아온다. 그래서 사람은 죽음 앞에서만은 누구나 경건해지고 엄숙해지고 겸손해지는 것이다.

영원히 죽지 않고 언제까지나 살 것처럼 행동한다면 우리 인간의 삶은 오만하고 타락하고 경망스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순간 죽음을 의식하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보다 엄숙하고 겸손하고 진지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 이런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 아닐까 싶다.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라크리모사(Lacrimosa)'에서 멈추어버린 모차르트의 미완성 유작(遺作) 레퀴엠도 좋지만, 오늘 밤에는 프랑스의 작곡가인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을 듣고 싶다. 청아한 목소리의 소프라노가 독창으로 부르는 '피에 예수(Pie Jesu)'를 들으며, 내 자신에게 나지막이 속삭이고 싶다. 메멘토 모리.

변준석 시인·영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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