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문화] 석굴암 불상의 백호

입력 2008-04-26 07:22:49

올해 초에 석굴암 본존불상의 이마에 박혀 있었다는 백호(白毫)를 소재로 한 영화 한편이 개봉된 적이 있었다. '동방의 빛'이라는 이름의 3천캐럿 다이아몬드로 설정된 이 영화에서는 이것을 둘러싼 탈취극이 주내용을 이룬다.

글자 그대로 '흰 털'을 뜻하는 '백호'라는 것은 불상의 이마 한복판인 눈썹과 눈썹 사이 조금 위에 만들어진 둥근 모양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원래 부처님의 눈과 눈 사이에는 하얀 털이 돋아 있어 그것이 늘 오른쪽으로 둥글게 감겨 있었으며 그 털을 늘이면 길이가 약 4m나 되었고 여기에 빛이 났다고 이른다. 이것이 여느 사람들과 다른 부처님의 특징으로 간주되어, 불상이 처음 조성된 때로부터 으레 백호의 형상이 표현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석굴암 불상의 이마에는 정말로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던 것일까? 영화는 어디까지나 상상력이 가미된 창작물일 뿐이라서 그 내용에 대해 공연히 딴죽을 걸 것은 못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 부분은 사실과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금강석이 나지 않는 나라에서 그만한 크기의 보석을 얻기도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되는데다, 아쉽게도 석굴암 불상에 관한 기록 자체가 별로 남아있지 않아서 그것이 다이아몬드였다는 확정적인 증거는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일본인 한학자 오쿠다 테이가 1920년에 펴낸 '신라구도 경주지'에는 석굴암 불상의 백호에 관해 짤막하나마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석존의 백호는 지금은 탈락되어 없으나 오래도록 매몰되어 땅속에 있었던 것을 최근의 수선 때에 토사 중에서 발견되었으나 지금은 총독부의 박물관에 있다고도 하고 혹은 전혀 행방불명이라고도 이르는데, 원래는 동해의 떠오르는 햇살이 새벽의 운무를 떨치고 만경창파에서 떠올라 훤하고 또렷하게 광명이 훨훨 타오르면 곧바로 굴내에 들어와서는 석존의 이마 위 백호에 반사되어 참으로 있기 어려운 대금광명을 발사하며 수정(水晶)의 이면(裏面)에는 황금을 붙여놓았다고 이르는데, 애써 수선을 하면서 예전과 같이 되지 못함이 애석하다."

여기에서 '수선'이라고 하는 것은 1913년부터 1915년까지 조선총독부가 벌인 석굴암해체수리공사를 말한다. 그리고 이 글에서 백호의 행방은 잘 알 수 없다고 하였으나, 그 정체만은 '수정'이었다고 분명히 서술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불상의 백호는 보석으로 만드는 것이 원칙이라 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대개 수정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던가 짐작할 수 있다. 가령, 충남 논산에 있는 은진미륵의 경우에도 애당초 수정 백호를 사용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현대식의 불상제작에 있어서는 수정뿐만 아니라 형편에 따라서 고급유리 또는 청동판을 사용하기도 하며, 그냥 그 자리에 오목하게 둥근 자리만 남기거나 볼록하게 조각하는 것으로 백호의 흔적을 만드는 수도 있다고 알려진다.

아무튼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해방 이후로도 한동안 석굴암 불상의 백호가 있던 자리는 그냥 비어있는 채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이 자리에 백호가 복원된 것은 1966년 8월의 일이었다. 그 당시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지름 4㎝와 두께 0.7㎝ 크기로 국내산 수정을 깎아 뒷면에 순금판을 받쳐 만든 것을 재설치하였으니, 이것이 곧 현존하는 석굴암 본존불상의 백호이다.

석굴암의 백호가 3천캐럿 크기의 다이아몬드니 뭐니 하는 얘기는 아무래도 그저 영화적 상상력의 결과물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순우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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