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진정 동화를 바란다면…"퍼주기보다 껴안아 줘라"
지난달 25일 프랑스 동북쪽 외곽지역인 보비니시(市). 3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프랑스 소요사태' 발발지인 도시로 당시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시멘트가 떨어진 낡디낡은 건물에는 예외없이 난삽한 페인트 낙서로 빼곡했다. 고가 철로 밑에서는 흑인 아이들이 모여 놀이에 열중했다. 히잡을 쓴 아랍계 여성들이 그곳을 무표정하게 지났다. 아랍, 아프리카계 등 이민자들의 '마이너리티 삶'을 여과없이 볼 수 있었다. "소매치기 조심하세요." 가이드가 당부했다.
◆무너진 똘레랑스= 지난 2005년 10월 10월 프랑스에서는 차별과 실업문제로 극심한 소외감을 느낀 북아프리카계 이민2세들의 분노가 폭발해 3주간 소요사태가 지속됐다. 9천여대의 차량이 불탔다. 프랑스가 '관용(똘레랑스)'의 상징으로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을 당시였다. 무너진 똘레랑스는 프랑스의 이민자 동화정책이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경제적 결핍과 불평등이 가장 큰 문제였다.
지역이민자교육협회 샤키르(모로코 출신 시민운동가) 간사는 "프랑스의 평균 실업률은 10%대이지만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교외지역은 40%를 훌쩍 넘는다"며 "프랑스 소요사태는 좁게는 그동안 갇혀있던 이민자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수면 위로 올려놓았고, 넓게는 이민자 포용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실제 정통 프랑스인의 실업률은 9.2%(2005년 기준)인데 비해 외국계 이주민의 실업률은 14%에 이르렀다. 대학 졸업자 경우 실업률은 5%에 불과한 반면 같은 학력의 북아프리카계 이민자 실업률은 26.5%나 된다.
'성장보다 분배·복지'를 중시하는 프랑스의 사회 시스템이 문제를 키웠다. 파이를 나눠주는 데 신경을 쓰다 보니 근로의욕이 떨어지면서 노동생산력이 저하됐고, 그만큼 복지혜택도 줄어 이민자들의 불만이 팽배하다.
총리 산하 '이민자정책자문센터' 블론디 퀘젤 소장은 "지난 30년간 프랑스가 경제적으로 쇠퇴하면서 사회복지 관련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이민자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며 "이민자들 스스로 자신들이 사회약자로 전락됐음을 느끼는 순간 포용은 곧 갈등과 마찰을 불러왔다"고 인정했다.
◆무엇을 배워야 하나=프랑스의 이민자 지원정책은 충분해 보였다. 프랑스 정부는 이민자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에게까지 내국인과 동등한 노령연금을 주고 있으며, 이들의 배우자, 자녀 등에게도 똑같은 의료보험 혜택을 부여한다. 하지만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부족했고, 돈 퍼주기가 능사는 아니었다.
일단 백지화는 됐지만 프랑스의회는 이민자들의 불·탈법 복지비용 청구를 막기 위해 '가족을 만나기 위해 입국하는 이민자 가족들이 진짜인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DNA를 검사를 하겠다'는 'DNA 법안'을 발의했다. 이는 프랑스내 인종차별이 얼마나 심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또 무슬림 등 파리 교외에 사는 이민자 2세 등 젊은이들 사이에는 '자신들만의 언어'로 소통한다. "프랑스 북쪽 릴시에서 남쪽 끝 마르세유까지 이민자 거리에서는 그들만의 언어가 통한다"는 얘기는 프랑스 정부가 이민자들을 지칭하는 각종 단어를 그들만의 언어로 바꾼다는 뜻이다. 미천하고 쓸모없게 취급당한다는 느낌이 싫기 때문이었다. '탈북자'를 '새터민'으로 고치는 식이다. 또 프랑스에서는 아랍계, 아프리카계 등 이민자 이름만으로도 입사 서류심사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경상북도 파리 투자유치 최송학 자문관은 "'관용'과 '포용'의 상징이었던 프랑스가 이민자 안기에 실패한 것은 밥만 줬을 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한국도 정부와 국민 모두가 이민자에 대한 진정한 포용없이 '퍼주기' '혜택주기'에만 급급하면 소요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 이민자들의 역사 한 곳 에 모인 파리 '이민자 박물관'
지난달 26일 오전 10시 프랑스 파리 '이민자 박물관'. 피부색이 각양각색인 관람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이민자들의 역사가 테마 및 연대별로 정리된 이곳에는 사진, 동영상, 모형 등 이민 관련 자료들이 빼곡했다.
특히 관람객들의 머리 위쪽에 붙어있는 '이민 역사 지도'를 고개를 뒤로 젖혀 선조들의 이주 경로를 찾는라 한참을 바라보던 흑인 학생들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은 프랑스 이민의 역사와 이민자들이 오늘날 프랑스가 있기까지 어떤 기여를 했는가 보여주고 있었다. 때문에 소요사태 같이 프랑스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은 더욱 적나라하게 적시돼 있었다. 케네시(37·여) 홍보담당은 "전시가 아닌 이민사(史)를 보여 주기 위해 박물관이 세워졌다"며 "치욕스런 역사를 숨기려고 한다면 이곳의 존재가치는 없다"고 말했다.
2년전 스페인에서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이민온 야만다(14)양은 "스페인인이 어떻게 프랑스로 넘어 왔는지 배우기 위해 왔다. 얼마나 많은 이민자들이 프랑스를 위해 고생했는지 새삼 느껴진다"고 말했다. 뤼엔(27·여)씨는 "튀니지에서 온 선조들의 숨결을 이곳에서 느꼈고 세월에 바래 누렇게 헤진 당시의 엽서에서 숙연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2007년 10월에 개장한 이민자 박물관은 6개월동안 1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미국, 캐나다 퀘벡 등 전 세계에서 단 3곳에 불과하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 "경제적 자립심 키울 수 있어야" 파트리가 시트럭 佛 이민자박물관장
"경제적 자립심을 키울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달 24일 파리에서 만난 피트리가 시트럭(44·여) 프랑스 이민자박물관장은 이주민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경제적 자립'을 꼽았다.
그는 2005년 일어난 파리 소요 사태는 실업 등 경제적 요인이 1차적 '뇌관'이었다고 진단한 뒤 "2차 세계대전후 경제재건 시기가 지나고 단순 노동력은 점점 사라져 갔다. 이와 함께 이민자들도 점점 변방으로 내몰리게 됐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차별도 한몫했다. "프랑스는 이주민들을 동화시키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어요. 하지만 돈이 능사가 아니었어요. 그들은 사회적 관심을 필요로 했어요."
철저히 무시되어 온 이민자들. 자동차에 불이라도 지르고 함께 떠들어야 사회적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는게 그의 서글픈 얘기다. "더 나은 실력을 갖추고도 이민자라는 이유만으로 취직을 못하는 일이 많았어요."
때문에 그는 이민자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실현해 줄수 있는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주민이 원하는 건 단순히 돈을 나눠주는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누구나 똑같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기회 제공이에요."
그는 한국에 대한 충고도 빼 놓지 않았다.
"파리 소요사태를 일으킨 아이들은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었어요. 이주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관리 대상이 아니죠. 결과는 어땠습니까?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2세들도 방치하게 된다면 비슷한 사건이 얼마든지 일어날수 있어요."
임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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