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시대 여성의 삶은 한마디로 三從之道(삼종지도)에 축약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혼인 전에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혼인 후엔 지아비를, 지아비가 죽은 뒤에는 아들을 따르는 것'이 여자가 지켜야 할 평생의 도리였다. 여자에겐 주체적인 생각도, 자신의 의지에 의한 행동도 허용되지 않았다. 현대인에게 삼종지도란 여성 억압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몇 해 전 국내 진보적 여성단체들이 펼친 대한민국 여성축제에서 삼종지도를 유쾌하게 비튼 '新三從之道(신삼종지도)'를 선보였다. 내용인즉 '어려선 아비와 어미의 뜻을 함께 따르고, 결혼하면 남편을 가르쳐서 평등한 가정을 만들며, 남편이 죽으면 아들에 연연하지 말고 나의 길을 간다'. 최근엔 또 다른 버전도 생겼다. 남자 쪽 입장의 유머러스한 신삼종지도다. '어려서는 엄마를 따르고, 결혼 후에는 아내를 따르며, 아내가 죽은 뒤에는 딸을 따른다.' 21세기판 '男尊女卑(남존여비)'도 있다. '남자의 존재는 여자의 비위를 맞추는 데 있다'는 거다.
광고회사인 대흥기획 마케팅연구소가 또 다른 흥미로운 보고서를 펴냈다. 서울'경기지역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주부들의 가치관이 현모양처에서 가정 CEO(최고 경영자)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우리 사회 주부들은 가정 경제 주도권을 잡고 있으면서 정보 수집과 발품으로 재산을 굴리는 패밀리 비즈니스의 책임자, 자녀교육 전문가, 남편 회사일 카운셀러 등으로 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주부들에게 자녀교육이야말로 최대 관심사일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조사 결과는 의외로 나타났다. 재테크냐 자녀교육이냐, 하나만 선택하라는 주문에 응답자의 57%가 '현명한 주부는 자녀 양육보다 재테크를 잘하는 것'으로 답했다.
물론 자녀교육이 여전히 주부들의 주요 관심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에 앞서 재테크 문제가 주부의 첫째 임무로 등극했다는 것이다. 또한 응답자의 34%가 본인 명의의 재산, 27%는 부부 공동 명의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49%는 부동산으로 재테크를 한다고 밝혔다.
바야흐로 한국 주부는 '賢母良妻(현모양처)'에서 돈 굴리기 능력의 '錢母良妻(전모양처)'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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