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 울릉군 북면 현포리 이장 박국환씨

입력 2008-04-21 07:56:32

4대째 고향 지키는 울릉 최연소 '머슴'

울릉 섬 일주도로를 따라 서쪽에서 북쪽 고갯길 모퉁이를 돌아서면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농·어촌 마을, 울릉군 북면 현포리가 보인다. 해안변을 따라 우측 바닷가 도로를 따라 자리 잡은 웅장한 바위산봉우리 '노인봉과 추봉'은 영화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 을 연상시켜 이 마을의 신비감을 더한다.

주변의 깎아지른 섬 풍광과는 달리 마을은 전체가 완만한 경사면을 이룬다. 주변에는 40여기의 통일신라시대 고분군과 석기시대부터 섬 지역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을 입증하는 고인돌(지석묘)1기가 동네 입구에서 방문객을 반긴다.

현포리 박국환(45) 이장. 그는 113가구 312명의 마을 주민 중에 가장 젊은 성인 남자로 꼽힌다. 울릉군 전체 25개 마을 이장 중에서도 최연소 이장으로 통하지만 정작 본인은 "40대 중반의 1남2녀를 둔 가장으로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며 웃는다.

현포리 주민 대부분은 개척민의 후손들로 예부터 바다와 농토를 함께 끼고 삶을 이어온 사람들로 농민도 어민도 아닌 철따라 직업이 변하는 반농·반어민으로 삶을 이어오고 있다. 산나물 재배로 고수익을 올리는 부자 동네로 입소문이 나 있는 이 마을 주민 평균 연령은 60세.

성인 남자들 중 박 이장과 초등학교 동창생인 김경봉(45·울릉농협 상무)씨, 두사람이 제일 젊은 축에 속한다. 두번째 젊은층은 해상 운송업을 하는 김상국(53)씨 동창생 6명. 그리고 85세까지가 주된 연령층을 이루고 있다.

박씨가 주민들의 만장일치 추대로 이장이 된 것은 2년 전 일. 마을에서 태어나 읍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경기도 인근에서 군대생활을 한 3년을 빼고는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는 4대째 성실하게 지역을 지키는 젊은 후손이라는 점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박 이장은 요즘 전문 건설업 대표로 활동을 하고 각종 봉사단체에도 참여하고 있지만, 1987년 군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서는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도 많이 했다. "당시 150만원으로 경운기 한대를 겨우 마련해 막노동 공사판을 누볐고, 1년후에는 1t 화물차를 구입해 공사장을 전전했지만 별 소득이 없어 접었습니다. 농토를 개간해 산나물과 천궁 농사를 짓다가 가격폭락으로 실패한 경험도 있지요."

죽기살기로 '망하면 이번이 마지막이다'는 각오로 15t짜리 오징어잡이 배 한척을 마련해 5년 동안 어부 생활도 했단다. 때마침 고기가 잘 잡히는 바람에 건설업 면허를 마련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고, 요즘은 오징어잡이가 시원찮아 2년전 고기잡이배는 처분을 했지만 이제 먹고살만은 하다고 넉넉한 웃음을 짓는다.

노인층이 많아 심부름꾼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지만 이장직을 맡고부터는 동네가 활기를 찾고 있다는 게 그의 자랑이다. 마을일을 맡은 후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마을 노총각 장가보내기 사업'. 이 일이 널리 알려지면서 신문(본지 2007년 12월 29일자 보도)에 성공담이 실리기도 했다.

이 사업은 박 이장의 개인 성금과 주민들이 마련한 '장가보내기 성금' 1천만원으로 국제결혼을 주선해 지난해 마을회관에서 김영관(44)·따미헌(24·베트남), 김형국(29)·딩티홍로안(21·베트남) 부부가 나란히 합동결혼식을 올리고 마을에 잔치가 벌어지기도 했다.

마을에서 짝을 지워 시집보낼 처녀가 없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제 이들 부부가 "올해는 아기 울음소리를 들려줄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박 이장은 동네일을 보다보니 주민들의 전화번호는 물론 이웃집 부엌의 젓가락이 몇개인지, 예금통장에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누구집 제삿날이 언제인지까지 모두 외우고 있을 정도로 마을 대소사를 두루 꿰고 있다.

마을 자랑도 넘친다. 비록 노령층이 많은 마을이지만 노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는 것. "낮시간에는 지역민 모두가 일터로 나가는 바람에 사람을 찾아 볼 수가 없어요. 이 때문에 이장과 마을 출신 기초의원 최병호(51)씨 두사람이 동네를 지키는 날이 많습니다."

마을에 겹경사가 이어졌다. 지난달 경북도가 10개 마을을 뽑는 '부자마을 육성 지정'사업에 선정된 것. "직접 계획서를 작성해 발표한 것이 경북에서 9등으로 뽑혔습니다. 마을 숙원사업을 벌일 수 있는 6억원의 예산을 도에서 지원받게 됐지요."

박 이장과 주민들의 부자마을 구상은 "해저 풍광이 아름다운 마을 앞 해안에 전국의 스킨스쿠버 마니아들이 즐겨찾을 수 있는 수상레저 센터를 마련해 많은 사람들이 사계절 머물 수 있는 마을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또 "항구 어판장 주변에 330.75㎡ 규모의 2층 건물을 세워 주민들이 생산한 농·수·축·임산물을 공동 출하 판매하는 향토 특산물 쇼핑점도 운영해 고령화된 농어촌을 활력이 넘치는 새로운 터전으로 마련한다"는 야무진 꿈을 품고 있다. 울릉·허영국기자 huhy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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