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벨 울린 대구·경북 12명, 그들은 지금…

입력 2008-04-19 07:56:02

"오늘의 마지막 골든벨 문제, 정답 확인하겠습니다. 정답은 '유년필독'(幼年必讀)입니다."

지난 7일 오후 대구 정화여고 강당. 한형기 교장이 마지막 50번 문제의 정답을 발표하자 학생들의 환호가 넓은 강당을 가득 채웠다. 이 학교 2학년 이선화양이 '도전! 골든벨'(KBS 1TV·이하 골든벨)에서 골든벨을 울렸기 때문이다. 이양이 67대 골든벨주자로 이름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이날 방송분은 20일 오후 7시 10분 KBS1 TV를 통해 방영된다. 골든벨은 대한민국 고교생이라면 누구나 참여하고픈 대표적 청소년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골든벨을 울린 예순일곱명의 학생 가운데 대구·경북 출신은 12명.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낼까.

◆퀴즈계의 달인들

대구경북의 골든벨 첫 주자는 2000년 당시 경북고 2학년이었던 권보원(25)군이다. 녹화 중에 '자신의 꿈은 대통령'이라고 거침없이 말했던 권군은 50문제까지 술술 풀어내 화제가 됐다. 2000년 골든벨 통합 왕중왕전 우승, EBS 장학퀴즈 4주 우승 및 제2회 왕중왕전 준우승, 경북고 전교회장 및 응원단장 등 화려한 경력은 그를 '골든벨이 낳은 최고의 스타' 위치에 올려놓았다. 권군은 2002년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권군은 진학 이후 학생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등 사회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2005년에는 법대 학생회장을 맡기도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관련자료를 상당히 많이 찾을 수 있다. 권군은 지난해 사법시험 1차 시험에 합격했다. 통화하기 위해 수소문을 했으나 휴대전화도 없다고 했다. 현재 신림동에서 사법시험 2차 시험을 준비 중이라는 것만 법대 학생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주인공은 2003년 효성여고 3년생 김세연(22)양이다. 33대 골든벨로 이름을 올린 김양은 2006년 연세대 상경계열에 입학했다. 다음 골든벨의 주인공은 2004년에 나왔다. 성광고 3년생 김종현(22)군이다. 김군은 당시 지리산 청학동에서 열린 여름특집편에서 50문제를 모두 풀어 41대 골든벨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청학동 토박이 김덕호군과 중국 유학생, 전국에서 예심을 거쳐 선발된 고교생 등 100명이 모인 결선에서 거둔 성과였다. 2005년 경북대 역사교육과에 입학한 김군은 현재 K2에서 공군으로 복무 중이다. 오는 6월 전역할 예정이란다.

44대 골든벨은 2005년 1월 5일 탄생했다. 당시 졸업을 한달 앞둔 능인고 3년생 김희탁(21)군이 주인공. 당시 김군은 패자부활전이나 찬스 등을 사용하지 않았다. 순탄하게 골든벨을 울린 데 대해 김군은 "순전히 운이었다"고 겸손해 했다. 그러면서 "평소 아버지와 형을 따라 책과 신문을 많이 읽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김군은 현재 해양대 4학년으로 기관시스템공학을 전공하고 있다.

◆기록의 연속, 경북학생들

이후로는 경북 학생들이 골든벨을 잇따라 울렸다. 특히 46·47대 골든벨은 2005년 3월 6일 구미여고에서 동시에 울려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다. 김지혜(21·당시 2학년)·김유진(20·1학년) 학생이 그 주인공이다. 당시 50번 문제의 정답은 '기형도'. 정답이 발표되자 학교 체육관은 온통 환호로 가득했지만 방송사 측은 허둥댔다. 꽃다발과 방석이 부족해 부랴부랴 한 사람 분을 더 구하느라 야단을 떨었기 때문이다. 두 학생은 모두 법대에 진학했다. 김지혜양은 연세대 2006학번, 김유진양은 고려대 2007학번이다.

김지혜양은 당시 본지와 인터뷰를 했지만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만큼 화제가 돼서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많이 했던 모양이다. 당시 학교 측은 변호사를 장래희망으로 삼았던 김지혜양의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한 것이 걱정이라고 했다. 김양은 "요즘도 그렇다"고 했지만 목소리는 밝았다. 골든벨 장학금과 지역장학금으로 학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법시험 준비도 시작했단다. 김유진 학생과 연락하고 지내는지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2005년 왕중왕전에서 만난 김희탁군과 친하게 지내고 연락도 했지만 최근 뜸해졌다고 했다.

48대 골든벨 주인공도 구미에서 나왔다. 2005년 오상고 2학년 박정애(22)양이다. 평소 독서량이 남달랐던 박양은 꿈이 도서관 사서다. 박양은 자신의 꿈을 찾아 동덕여대 문헌정보학과에 진학했다.

52대 골든벨 주인공 김은정(20)양은 기어코 일을 냈다. 2005년 10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300회 특집에서 골든벨을 울렸다. 전국 100개 고교 대표들이 모인 행사에서 거둔 쾌거라 그 기쁨은 더욱 남달랐다. 김양에겐 대학 4년간 등록금 전액 장학금과 유럽 역사탐방 배낭여행의 특전이 주어졌다. 할아버지의 권유로 참가했던 김양은 "학교의 명예는 떨어뜨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골든벨을 울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골든벨을 울린 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대장금'(한의사)이 장래 꿈이라고 한 김양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에 진학했다.

경북 학생들의 골든벨 소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왜관 순심고 윤문열(18)군은 2006년 1학년 때 56대 골든벨 타이틀을 따내 이목을 집중시켰다. 윤군은 여세를 몰아 같은 해 연말에 열린 왕중왕전에서도 골든벨을 울려 다시 한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윤군은 현재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지난해 1월 61대 골든벨에 오른 김신해(20·당시 경산 하양여고 3년)양은 올해 서울 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해 정치부 기자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 만큼 자신의 적성을 찾아간 결과다. 지난해 연말에는 경북 김천고 2학년 이규인(19)군이 65대 골든벨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새겼다.

◆출연 인연 이어가기도

이들에게 골든벨은 학창 시절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권보원군은 2002년 KBS 저널 9월호에서 "여러 사람들과 공유했던 따뜻한 시간들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풀이 준비를 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고 했다. 김지혜양은 "학교에서 1천 문제 가까이 기출문제를 나눠 줬는데 딱 하나만 나오더라"고 기억했다. 다른 학생들의 증언으로도 예상 문제는 별로 효과가 없다. 오히려 시사나 독서가 출연자들의 희비를 엇갈리게 했다.

골든벨은 출연자들에게 한번의 행사로만 끝나는 것도 아니다. 골든벨 출연 학생들은 2005년 공식 홈페이지인 '골든벨이 맺어준 사람들(골맺사: www.goldenpeople.net)'을 만들어 온·오프라인 모임을 하고 있다. 회원들은 ▷봉사활동 ▷골든벨 출연자 중 수능 응시생에 기념품 발송 ▷독서 모임 등을 하고 있다. '황금빛 종'을 향한 열망이 사회로의 베풂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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