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혁신도시를 재검토하겠다고 했다가 지방의 반발이 거세지자 불과 사흘 만에 재검토는 없다고 서둘러 진화작업에 나섰다. 추진하되 실효성 있게 보완하겠다고 일단 물러섰다. 이번의 해프닝은 영어 몰입교육을 하겠다고 설익은 정책을 내놨다가 여론의 비난이 빗발치자 거둬들인 인수위 실책의 再版(재판)을 보는 듯하다. 이번 일을 통해 보면 이 정부에 과연 국가균형발전 의지가 있는지, 일관된 지방정책이 있는지 의심이 든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은 수도권 집중을 막고 지방으로의 인구 분산을 통해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발전을 추구하려는 노무현 정부의 국가균형발전정책의 중심축이었다. 원래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2001년부터 지역 지식인, 지역 시민단체, 지방자치단체 등이 함께 일으킨 지방분권운동의 제1번 의제였다. 이러한 분권운동의 요구를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노무현 등 여야 대선 후보들이 수용하고 대국민협약에 서명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후 국가균형발전이 최우선의 국정의제로 설정되고 마침내 2003년 12월에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제정됨으로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법률적 토대를 갖추게 되었다. 이후 지방으로 이전되는 공공기관을 각 시도가 선정한 혁신도시에 집중시키는 정책이 수립되었고 176개 공공기관을 12개 광역시도에 이전하는 계획이 확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여러 곳에서 혁신도시 건설 공사가 착수되었다.
일이 이까지 진행된 상태에서 이명박 정부가 혁신도시 건설의 효과가 크게 과장되었다는 감사원 보고를 빌미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그 재검토 발언은 혁신도시 기공식에 참석하여 다음 정부가 못 고치도록 대못을 박는다고 말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맞서서 대통령이 되면 그 대못을 뽑아버리겠다고 호언한 이명박 후보의 생각을 실행에 옮기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노무현 정부의 혁신도시 건설은 애초에 논란의 여지가 적지 않은 정책이었다. 지방 이전 공공기관을 광역행정단위별로 분산 배치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기존도시가 아닌 새로운 혁신도시를 건설하여 공공기관을 이전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공공기관의 이전만으로 수도권 인구 분산 효과가 있을까? 혁신도시는 유령도시가 되지 않을까? 혁신도시가 말 그대로 지역 혁신을 선도하여 지방을 살리는 도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들이 제기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의문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 심각히 검토되어야 할 문제들이었다.
국가균형발전위원으로 참가하고 있을 당시 필자는 광역시도별로 잘게 쪼개어 11개나 되는 혁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지방을 재창조하기 위해서는 영남권, 호남권, 중부권 등 지방의 초광역경제권별로 그 각각의 발전계획에 적합하게 집중 이전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정부의 초광역경제권 발전계획이 수립되고 그것에 대해 지방의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이기주의에 빠져 자신의 행정구역 내에 공공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서로 다투었기 때문에 결국 공공기관이 10개 지역으로 분산 배치되게 되었다.
아무튼 혁신도시 건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정책이 되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혁신도시를 수도권 인구 분산과 지방경제 활성화라는 원래의 정책목표가 실현되도록 보강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특히 혁신도시들을 초광역경제권 단위로 연계시키는 조정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점에서 '현 정부의 5+2 광역경제권 구축과 연계하여 규모의 경제와 효율성을 달성하도록 혁신도시를 보완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는 청와대의 입장 표명은 옳다고 하겠다.
혁신도시 건설 정책은 국가균형발전의 하나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그것은 많은 한계와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방정책들에 의해 보완되고 조정되어야 한다. 노무현표 대못을 뺄 것이 아니라 이명막표 대못을 새로 박아 국가균형발전의 토대를 강화해야 한다. 혁신도시는 축소할 것이 아니라 보강해야 마땅하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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