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학 총장, 직선제만이 능사인가?

입력 2008-04-16 10:29:54

영남대 계명대 등 지역 명문 사립대들의 올해 새 총장 선출을 앞두고 차기 총장을 꿈꾸는 예상 후보들간의 물밑 경쟁이 벌써부터 시작됐다. 영남대와 계명대의 경우 직선제와 간선제로 총장 선출 방법은 다르지만 새총장에 대한 지역사회와 대학 구성원들의 기대는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학의 자율화와 민주화 욕구가 분출하던 88올림픽을 전후로 해서 총장을 직선제로 선출하는 대학이 등장하기 시작한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90년대 초부터는 국공립대 총장도 직선제로 바뀌었는데, 당시 시대적인 대세에 부응했던 총장 직선제는 정치권으로부터의 대학 독립성 확보와 재단의 전횡에 대한 민주화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취지와 장점은 희석되고 부작용과 단점만 불거지고 있다는데에 있다. 상아탑의 총장 선거전이 일반 정치판의 선거가 무색하게 혼탁양상을 보이면서 이전투구의 볼썽사나운 추태를 연출해온 측면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지연과 학연에 따라 패가 갈리고 학과나 전공에 따라 편이 나뉜다면, 정책대결보다는 상호 비방과 반목이 앞선다면, 대학의 총장 선거가 우리가 늘 부끄럽게 여기고 있는 정치판 선거와 다를게 무엇인가. 또 그렇게 총장에 당선되더라도 논공행상에 따라 또다른 분열과 갈등이 야기되고, 자신을 지지한 교수들에 발목이 잡혀 대학의 개혁과 소신있는 정책수행에 차질을 빚는다면 총장 직선제야 말로 대학 발전에 득이 아닌 독이 될 따름이다.

더러는 너도나도 출마하고 보자는 식으로 총장 후보가 난립을 하고 교직원과 학생들의 참여 요구가 확대되면서 대학 구성원간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지난번 영남대 총장 선거전이 과열양상을 빚으면서 교직원 노조가 파업을 하고 총학생회와 비정규직 교수노조가 별도의 총장을 선출하는 파행을 연출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그에 앞서 대구대에서는 결선 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당선된 총장이 학내 갈등으로 끝내 중도하차했는가 하면, 지역의 한 교육대학에서는 선거의 진흙탕에서 불거진 논문 표절시비로 총장이 대학을 떠나는 불상사를 빚으면서 당사자와 대학 구성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지역대의 한 총장은 "교수사회의 선거전은 정치권의 선거처럼 바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한사람 한사람 개별 접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1년 이상의 물밑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더구나 재선을 노릴 경우 임기 중반부터는 또다시 선거운동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소신있는 정책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국립대의 한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의 총장 평균 임기가 20년이 넘고, 스탠퍼드대는 9년이나 된다"고 소개했다. 연임은 커녕 4년 임기 채우기에도 급급한 우리 현실에서 대학의 장기적인 발전전략을 세우고 추진하기란 애초에 틀린 일임을 방증하는 사례이다.

대학이 몇년마다 다가오는 선거몸살에 휩쓸리면서 상당수 교수들의 학문 분위기가 흐트러지고, 특정 후보의 지지와 반대 입장에 따라 패거리문화가 형성되는 등 폐해가 도를 넘었다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이 때문에 지역의 교수사회에서도 총장 직선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온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의 거센 물결과 함께 시작된 총장 직선제는 대학의 민주화와 자율화를 위한 최고의 가치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총장 직선제가 그동안은 대세였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더이상 능사는 아닌 것 같다. 물론 재단이 정상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직선제를 폐지하는 것 또한 문제가 없지는 않다.

다만 선거만능의 후진적 폐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직선제만을 고집할게 아니라 간선제적 요소를 가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외국에서는 간선제로 총장을 뽑는 경우가 많다. 재단과 교수회, 학생회 동창회 그리고 지역사회의 대표들이 총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총장을 선출하는 것이다.

외부에도 문호가 개방되어 있고, 능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연임도 가능하다. 우리도 이제 대학마다 상황과 형편에 걸맞는 고유의 총장 선출 모델을 개발해야 할 때가 되었다. 오로지 직선제만이 능사는 아니다.

조향래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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