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자녀 품고 사는 시각장애 이규열씨

입력 2008-04-16 09:30:07

▲ 동산의료원에서 양쪽 눈 수술을 받은 이재민군을 할머니 전무열씨가 애처롭게 지켜보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동산의료원에서 양쪽 눈 수술을 받은 이재민군을 할머니 전무열씨가 애처롭게 지켜보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보증금 없는 월세 17만원짜리 두칸 방에서 살아가는 여섯 식구가 있다. 경북 김천 지좌동의 한옥집 한편에 살고 있는 이규열(37)씨 집. 재성(15), 성희(14·여), 재협(13), 재경(10), 재민(8), 애들만 다섯이다. 안구 전체가 심하게 떨리는 장애(3급 시각장애)로 다섯 아이들을 품고 살아가는 아버지 이씨는 기초생활수급자. 재협이와 재민이도 선천적으로 시신경이 좋지 않다. 엄마는 6년 전 남이 됐다. 이씨의 경제적 무능 탓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2년부터 아버지는 중화반점을 운영하다 진 빚을 감당해야 했다. 한달 이자만 30만원 넘게 나가고 있다. 여섯 식구가 국가에서 받는 보조금은 장애수당을 포함해 150여만원. 빚을 갚으며 먹고살기에는 빠듯한 액수다.

15일 오후 동산의료원 소아과 병동에서 만난 재민이는 여덟살 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할머니 전무열(59)씨 옆에서 천진난만하게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는 재민이는 양쪽 눈 수술을 갓 마친 상태였다. 천연덕스럽게 인사를 건넨 재민이의 한쪽 눈은 거즈로 덮여 있었지만 나머지 눈은 아이스크림에 박혀 있었다. 재민이가 수술을 하게 된 건 운이 좋아서였다. 우연한 기회에 동산의료원에서 재민이의 눈을 정밀검사하게 됐고 수술을 하기까지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전처럼 삐딱하게 얼굴을 돌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초점을 맞추기 쉬워질 테니까요." 재민이의 수술을 맡은 동산의료원 이세엽 안과 과장은 한참 뒤 말을 이었다. "유전인 것 같다"며 "나머지 형제들도 정밀검사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 규열씨는 검사를 받는다 해도 수술을 받기엔 이미 많은 나이. 하지만 아이들에겐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문제는 비용.

"할매가 그러니까 아들이 그렇고 손자가 또 그렇지요 뭐. 유전이지요. 에휴."

할머니 전씨는 한숨을 쉬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전씨와 눈동자를 맞추긴 어려웠다. 전씨 역시 60 평생 안구질환을 안고 살았다. 전씨는 아이들이 고생하는 게 자기 탓이라며 답답해했다.

"5년 전부터 인연을 맺었는데 성실하고 일은 잘해요. 2년 전에 무릎이 안 좋다고 수술을 받은 뒤부터는 아르바이트 삼아 일을 하곤 해요. (애들 다섯 데리고 산다는데) 안타깝지요. 말하면 뭐해."

김천지역 한 일간지 지국장 서경수씨의 말이다. 아버지 이씨는 눈뿐 아니라 무릎도 좋지 않다고 했다. 왼쪽 무릎 연골이 찢어져 재작년에 무릎 수술을 받았다. 비록 적은 돈이었지만 그때까지는 신문배달을 하며 한달에 25만원 정도는 벌었다. 그러나 다리 수술 이후로는 10만원 안팎에 그쳐 아이들 간식비로 겨우 쓰인다.

이씨는 "옳게 못 낳아서 애들이 불쌍치"라며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털어놨다.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못해 한때는 아이들을 보육원에 보낼까 고민도 했다. 7년째 살아온 집이지만 아이들에게 따뜻한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월세가 밀리고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장마철에 비가 새도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씨와 아이들의 흔들리는 눈동자처럼 이씨 가족은 위태로워 보였다. 취재를 마무리할 즈음 이씨와 할머니 전씨의 초점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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