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학생들이 치른 전국연합진단평가 결과가 알려지면서 우리사회는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판도라 상자'를 열어젖힌 꼴이다.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우리 교육의 해묵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듯하다. 도시와 농산어촌은 물론 같은 도시, 즉 대구에서도 수성구와 비수성구의 학력 격차, 사교육의 영향력 등이다.
진단평가는 10년 만에 부활된 일제고사여서 애초부터 그 결과에 대해 학부모는 물론 학교와 교사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학부모들은 자녀의 성적은 물론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평균 점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해 했다. 학교들도 마찬가지. 이웃 학교의 점수를 입수해 비교하는가 하면 성적이 낮으면 낮은 대로, 높으면 높은 대로 성적 올리기에 비상이 걸렸다. 학원들은 학교별 평균 점수를 수집해 성적 경쟁을 부추겨 수강생 모집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예상했던 결과다. 교육당국은 진단평가의 목적이 학교서열화나 학력수준의 평가가 아니라 '진단'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는 점수에 예민하다. 어떤 형태든 점수가 나오면 그 순간부터 아이들과 학교들은 살벌한 점수 경쟁의 세계로 내몰린다.
진단평가가 낳은 더 큰 문제는 비수성구나, 농산어촌지역 학부모들의 스트레스다.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아니면 나름의 신념으로 '맹모삼천'을 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는 학부모들을 잠 못 이루게 하고 있다. 초교 5학년 딸을 둔 북구에 사는 기자도 마찬가지. 굳이 빚을 내서까지 수성구에 살고 싶지 않다는 소박한 생각마저 흔들리게 만드는 현실이 밉다. "기자가 아니라 학부모라고 생각하고 드리는 말씀인데 자녀교육을 위해서라면 수성구로 가세요." 북구의 한 초교 교장선생님의 조언은 마음을 납덩어리처럼 무겁게 만들었다.
진단평가의 파장은 일파만파인데 교육당국은 잔 물결조차 없는 호수이다. 진단평가의 목적은 '진단'인데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진단평가는 학생들의 개별 수준을 파악해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 보자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진단평가 시행 전 전교조, 일부 학부모단체들은 성적 지상주의, 학교 서열화 등 진단평가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그때 대구시교육청과 경북도교육청은 진단평가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고 일축했다. 그리고 이런 부작용을 의식한 탓인지 성적공개를 꺼렸다. 경북도교육청은 아예 도내 평균 점수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마치 진단평가의 부작용이 교육당국의 의도와 관계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하지만 학력 격차의 문제점은 학생들이 성적표를 거머쥔 날부터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성적표에는 개인 점수와 학교의 평균점수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은 사회적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충분히 예상되는 '일'을 벌여놓고, 그 결과에 대해선 그런 의도가 아니라며 발을 빼는 것이다. 이런 것을 '미필적 고의'라고 하던가?
지역 및 학교별 학력 격차 해소를 위해 교육청은 학교가 방과 후 학습활동 강화 등 자체 대책을 세울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학력 격차 해소는 성적 부진 학생 몇명의 공부를 봐주는 차원이 아니다. 학력 격차를 줄이거나 없애는 것은 개별 학교와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교육당국이 정책으로 풀어야 할 대상이다.
김교영 사회1부 차장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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