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 동갑내기 11년 축구지기 발까지 끌린다
아내가 말했다. "이근호? 대구FC의 유일한 스타?" 축구를 모른다며 탓할 일은 아니다. 적어도 현재까진 맞는 말이다. 상당수 축구팬들도 K리그 대구FC의 '간판'으로 이근호(23)를 꼽는다. 하지만 이 말은 올해 내로 틀린 얘기가 될 것 같다. 팀 동료인 미드필더 하대성(23)의 활약이 부쩍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갑내기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사이다. 인천 만수북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함께 공을 찼으니 어느덧 11년 지기.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은 유니폼을 입었다. 고교인 부평고를 졸업한 후 두사람은 인천 유나이티드와 울산 현대로 엇갈렸지만 지난해 대구에서 조우했다. 같은 방에서 먹고 자고 훈련하며 하루 24시간 붙어있는 친구.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친구. 두 사람의 우정과 축구 이야기를 들어봤다.
◆눈빛만 봐도 안다
두친구가 만난 건 인천 만수북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하대성은 이 학교 3학년 때부터 축구부원이었고, 이근호가 뒤늦게 전학을 왔다.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이어진 축구부 합숙생활. 좋으나 싫으나 붙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눈만 보면 안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에요. 서로 스타일을 잘 아니까 공을 딱 잡으면 '아, 근호가 수비수 뒤로 돌아 들어가겠구나' 하고 아는 거죠." 어린 시절 얘기가 계속됐다. "초등학교 때 근호가 어시스트상을, 제가 득점상을 받았거든요. 그게 다 근호가 저한테 어시스트를 해준 거고, 제가 골을 넣은 거였어요. 사실 공을 잡으면 근호가 움직이는 게 먼저 보여요."
이근호가 또 다른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작년에 제가 대구로 이적해서 훈련을 하는데요. 대성이가 공을 잡으면 저부터 찾는 거예요. 하나 만들어주려고. 그러다가 감독님이나 코치님한테 굉장히 혼났어요. 축구 둘만 하냐고. 대성이한테 미안했죠. 올해도 제가 2개나 주워먹었잖아요." 사실 이근호가 올 시즌 기록한 3골 중 2골은 하대성의 슛이 골포스트나 골키퍼 손을 맞고 나온 것을 밀어넣은 골이다. "에이, 그건 아니다." 하대성이 손을 휘휘 저었다. "니가 자리 잘 잡고 해서 어려운 거 넣은 건데 뭘." 지금 이근호는 대구FC 공격수, 하대성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
대구로 와서 두 사람이 함께 뛰었던 첫 경기도 뇌리에 깊이 남아있다. 지난해 3월 21일 울산 현대와 홈 경기. 후반 17분 하대성이 동점골을 넣어 1대 1로 팽팽하게 맞서던 경기 종료 직전, 이근호가 수비수 4명을 뚫고 극적인 역전골을 넣었던 것. "대구FC의 시즌 첫승이기도 했고요. 대성이와 제가 사이좋게 한골씩 넣어서 이긴 점도 그랬고요. 대성이가 울산 현대에 앙갚음을 한 거죠. 정말 기분이 남달랐어요."
◆바늘과 실
선수단 숙소에서 한방을 쓰는 둘은 늘 붙어다닌다. 이근호가 지난해 대구FC로 이적했을 때 누구보다 반겨준 건 하대성이었다. "운이 참 따라준 것 같아요. 근호랑 같은 팀에서 뛸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거든요." 대구와 인연이 없던 이근호를 챙겼고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하대성도 스타 친구 덕을 봤다. "운동을 하니까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거든요. 그러면 근호를 알아보는 분들이 있어요. 덕분에 공짜 저녁도 많이 얻어먹고, 서비스도 막 나오고 크크. 그런데 근호는 대구에서만 통해요. 대구에서만." 훈련이 없는 날에는 당구를 치거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대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당구는 제가 낫죠. 요즘 근호가 당구에 빠졌어요. 실력이 꽤 올랐는데 그래도 저한테 7연패를 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당구장에 같이 안 가려고 해요. 헤헤."
사실 두사람의 성격은 사뭇 다르다. 이근호가 거침없고 외향적인 성향이라면, 하대성은 조용하고 수줍음을 많이 탄다. 경기 스타일에도 두사람의 성격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서로 상대방의 장·단점을 평가해달라고 했다. 하대성이 먼저 입을 뗐다. "근호는 되게 저돌적이고 자신감 있게 드리블로 돌파를 해요. 그게 제일 큰 장점이죠." 단점은? 이근호가 한마디 거들었다. "기초가 없다잖아." 웃음. "아냐, 너 많이 좋아졌어. 흐흐. 사실 근호한테 기본기 부족하다는 얘기도 많이 했는데요. 골도 많이 넣고 기량이 높아지니까 센스도 많아지고 그런 단점들이 많이 보완되더라고요."
이근호가 말을 이었다. " 대성이의 축구 감각이나 시야는 어릴 때부터 정말 뛰어났어요. 패스를 한번 해도 욕 안 먹는 쉬운 패스 말고 어렵더라도 킬패스를 하려고 하죠. 그런 게 정말 장점이에요. 다만 개인적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좀더 과감하게 공격하는 거예요. 그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아요. 원래 대성이가 공격적인 친구거든요. 아, 이런 얘기는 감독님이 하셔야 되는구나. 푸하하."
◆역경을 딛고
같은 듯 다른 두사람의 축구 인생. 위기는 하대성에게 먼저 찾아왔다. 초교 6학년 때 차범근 유소년 축구교실 대상을 받기도 했던 하대성은 부평고에 진학하자마자 오른 무릎에 부상이 도졌다. 1년 동안 집에서 쉬었는데 낫지 않았다.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담당 의사는 축구를 다시는 못할 거라 했다. "그래도 포기는 안 했어요. 2년 동안 치료를 받은 뒤에야 다시 잔디를 밟을 수 있었죠." 하대성은 부평고 3학년 때인 2003년부터 서서히 경기 출전시간을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부평고는 전국 최고였다. 그해 3관왕에 올랐다. 부평고에는 이근호와 하대성이 있었다.
하대성은 2004년 울산 현대에 입단,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김정우, 이호, 최성국, 이천수 등 쟁쟁한 선배들의 그늘에 가렸다. 그해 고작 2경기밖에 나서지 못했고, 2군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하대성은 2006년 대구FC로 이적해서야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다. 첫해 18경기에 출전했고, 지난해에는 플레이메이커로 변신, 25경기에서 2골·2도움을 기록했다.
이근호는 프로팀에 오면서 추락을 거듭했다.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지만 데뷔 첫해 컵대회 5경기 출전이 전부였고 2006년에도 K리그와 컵대회를 포함해 3경기에 나가는 데 그쳤다. 득점이나 도움도, 90분 풀타임을 뛴 적도 없었다. '드리블이 많아 팀 플레이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2군 생활은 3년째 이어졌다. "사실 저는 자유로운 드리블 돌파를 좋아하고 과감한 플레이를 좋아하는데 패스 위주의 경기를 하려니 실수가 많이 나왔죠." 이근호는 2군리그에서 한을 풀었다. 2군리그 19경기에 나서 7골 7도움을 올려 2군리그 MVP에 뽑혔다. 이근호는 입대와 이적의 갈림길에서 대구행을 택했고, '물 만난 고기'가 됐다. 지난해 컵대회를 포함해 10골 3도움을 올려 토종 공격수 중 1위를 기록했다. 올림픽대표팀에 선발돼 3골 2도움으로 김승용과 함께 가장 많은 공격 포인트를 올렸다.
◆꿈을 향해 달린다
이근호는 동아시아대회에서 국가대표팀에 선발됐지만 평가는 혹독했다. 제 기량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허정무 감독으로부터 체력적인 약점도 지적받았다. 문전에서 볼처리가 미숙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잠깐이었지만 국가대표팀에서 생활해보니까 제가 부족하다는 걸 많이 느끼겠더군요." 기술적인 부분의 지적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당장은 국가대표팀에 뽑히지 않았지만 좀 더 단점을 보완한 뒤에 뽑히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 올 시즌에는 한골을 넣을 때마다 지역의 불우시설을 위해 100만원씩 기부하기로 약속도 했다.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대성은 컨디션이나 페이스 조절을 제대로 해 볼 생각이다. "1군에서 두시즌을 경험해보니까 이제 몸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지 알 것 같아요. 그동안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제가 그만큼 준비가 안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두친구의 올해 목표는 올림픽대표팀의 일원으로 베이징에 함께 가는 것이다. 목표는 절반 이상 이뤘다. 이근호와 하대성 모두 지난 5일 올림픽대표팀 예비엔트리에 포함됐다. 더 멀리는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세계 최고의 클럽에서 뛰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두젊은이에게 멀기만 한 꿈은 아닌 듯하다. 숙소 복귀가 늦었다며 서두르는 이근호에게 물었다. "헤어스타일은 왜 그래요? 집에서 잘랐어요?" 이근호가 푸푸거리며 웃었다. "아뇨, 오장은 선수 따라한 건데 영 반응이 안 좋아요. 다시 길러야죠. 뭐."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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