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쌀의 복수

입력 2008-04-08 11:09:53

시간이 흐를수록 '찬밥' 돼 온 게 우리 쌀이다. 생산량이 모자라 발 동동거리던 게 얼마나 됐다고, 진작에 "값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득세해 있는 게 바로 이 주곡이다. 인기도 떨어져 소비량이 1986년엔 1인당 한가마 반을 넘었으나(127.7㎏) 지금은 한가마 이하(78.8㎏)로 줄었다. 하릴없이 농부들이 손을 놓는 바람에 작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벼농사 농가가 전체의 절반 이하(49.6%)로 내려앉았다.

이러는 판에 2006년 8월 이상한 기사가 하나 떴다. 차후 2년 사이 국제 쌀값이 2배로 뛸 것이라는 예견이었다. 당시 100파운드(45.36kg)당 9.9달러이던 국제 쌀값이 20달러 선으로 치솟으리라 내다본 것이다. 어리둥절해진 우리 농부들은 "뭔가 잘못된 이야기이겠지" 하고 넘겼다. 실제 그때까지는 국제 쌀값에도 큰 요동이 없었다. 그 이전 최고였던 1993년의 12.95달러 기록은 여전히 건재했다. 2005년 한해 동안 잠시 쌀값 상승률이 48%에 이르러 밀(19%) 옥수수(8.3%)를 웃돈 적은 있으나, 그래 봐야 당시 가격은 기껏 10달러 미만이었다. 그 추세는 작년 9월까지도 유지됐다.

그러나 올 초를 전후해 상황이 달라졌다. 국제 쌀값은 지난달 3일 100파운드당 18.10달러, t당 400달러에 도달했다. 27일엔 태국산 중품값이 하루에만 30%나 치솟아 1월 초 380달러이던 게 760달러로 급등했고, 지금은 800달러 선마저 넘었다.

2006년의 예견이 현실화되기 시작하자, 쌀밥 먹는 인구가 30억명이나 된다는 아시아가 소용돌이에 빠졌다. 수출국들은 앞날을 걱정해 속속 수출 통제에 들어갔다. 수입하기 힘들어진 나라들에서는 폭동 기미까지 나타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불안감을 어쩔 수 없는 듯, 오늘 공공비축미 5만t을 방출했다. 예년보다 시기적으로는 두어달 앞섰고, 방출량은 70%나 늘었다.

문득 불길하게 연상되는 게 필리핀이다. 그 나라는 1980년대 중반까지도 주요 쌀 수출국이다가 연간 130만t의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다급해진 그곳 정부는 식당들에 밥을 0.5인분으로 쪼개 팔도록 권장하고, 대통령은 베트남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쌀을 팔아 달라고 구걸했으나 여의찮은 상황이다.

우리도 이미 식품자급률(2006년) 59.7%, 곡물자급률 25.3%(2003년)의 위험 국가가 돼 있다. 반면 농축산물 무역 적자는 100억달러(작년)를 넘어섰다. OECD 국가 중에서도 최악이다. 쌀의 복수가 두렵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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