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의 시사코멘트]대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반대

입력 2008-04-05 09:46:31

지난달 28일 많은 사람들이 등록금 인하, 학자금 저리 대출, 국내총생산 대비 교육 예산 7% 확보와 같은 조치들을 요구하면서 서울 도심에서 시위했다. 이 시위를 보도한 신문 기사들은 그들의 요구에 대해 별다른 논평을 하지 않았다. 그저 시위대가 법을 따른 덕분에 '경찰의 체포조가 할 일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시위대가 법을 지킨 것이 중요한 기사가 되는 현실도 답답하지만, 그들의 요구가 타당한지 따져보지도 않는 풍토는 마음을 어둡게 한다.

시위대의 요구는 본질적으로 대학생들이 누리는 혜택을 늘리라는 얘기다. 문제는 그들이 추가로 받을 혜택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 비용을 안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게 비용을 안게 될 사람들은 누구일까? 요구 사항마다 상당히 다르겠지만, 가장 큰 부담을 안게 될 집단은 미래 대학생들이다.

현재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인하나 동결은 물론 유리하다. 그들이 등록금을 더 내도, 당장 더 낸 만큼 좋은 교육을 받을 수는 없다. 오른 등록금이 더 좋은 교육으로 구체화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미래 대학생들의 이해는 사뭇 다르다. 현재 대학생들의 등록금이 학교를 유지하고 정상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미래의 교육의 질은 낮아질 터이다. 당연히, 미래 대학생들은 손해 본다. 현재 대학생들과 미래 대학생들의 이해가 맞부딪치는 것이다. 미래 대학생들을 대변하는 것은 대학이므로, 대학은 현재 대학생들로부터 되도록 많은 등록금을 거두려 한다.

이런 이해 상충은 젖먹이와 미래 형제 사이의 이해 상충과 비슷하다. 젖먹이는 되도록 오래 엄마 젖을 먹으려 한다. 그러나 젖먹이가 젖을 뗄 나이가 지나도록 젖을 먹으면, 앞으로 태어날 형제들이 손해 본다. 엄마의 임신이 늦어지고, 엄마 몸을 충실히 해서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충실히 할 영양이 젖먹이에게 간다. 그래서 태어날 아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엄마는 떼쓰는 젖먹이를 떼어놓는다. 그런 식으로 엄마는 자신의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여 자식들의 상충하는 이해를 조정한다.

이런 종류의 이해 상충은 자유로운 시장에선 나오지 않는다. 가격 기구가 자동적으로 재화의 수요와 공급을 조절해서 거래 당사자들의 이해가 조화된다. 자발적 거래는 늘 당사자들에게 이롭다.

그러나 우리 교육 체계에선 등록금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결정되지 않고 정부의 압도적 영향 아래서 결정된다. 정부는 등록금의 수준을 포함해서 교육의 모든 부면들을 엄격히 통제한다. 그런 상황에선 등록금의 결정은 정치적 영향 아래 놓이고 현재 대학생들과 미래 대학생들 사이의 겨루기가 나온다. 가격 기구가 작동하지 않으므로, 등록금의 합리적 수준을 결정할 길도 없다. 다수의 힘으로 보다 유리한 조건을 얻으려는 이번 시위는 바로 그런 사정에서 나왔다.

등록금이 시장의 가격 기구가 아니라 정부의 통제에 의해 결정되는 한, 등록금의 수준은 정치적 힘의 우열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는 무엇이 등록금의 합리적 수준인지 가늠할 수도 없다. 이번 시위는 우리 교육 체계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과 그런 잘못을 바로잡는 길은 고등교육에 시장 원리를 도입하는 것임을 새삼 보여주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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