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그 심연함이 두렵다
물은 늘 위태롭다.
검은 하늘을 투영하며 마치 미지의 생명체처럼 일렁인다. 그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쉽게 숨을 수 있고, 여차하면 튀어나올 수 있다. 물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물질이지만, 그래서 더욱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오염된 젖줄인 '물'과 그 속에 잉태된 '괴물'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그린 영화다. 형식적으로 SF 액션영화지만, 내용적으로는 납치를 소재로 한 가족영화다.
물은 우리 사회의 은유다. 숱한 상처를 품은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가는 무의식의 강이고, 독극물의 강이고, 또 위험이 잠복된 강이다.
화가 장숙경은 그 위태로운 이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물 밑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정체 모를 검은 물체가 언제든 튀어나올 듯하다. 수심도 얕다. 언뜻 보면 보일 것도 같은 괴물, 그러나 전체는 보여주지 않는다.
작가는 물 밖이 아니라 물 아래가 더 존재감이 넘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불안하기 마련이다.
거대한 괴물이 헤엄쳐 다니는 물에는 많은 입자들이 떠 있다. 마치 에일리언의 알 같은 형태들이다. 괴물의 자가복제, 무한복제를 뜻하는 것은 아닐까. 멈추지 않는, 위험한 우리 사회의 그림자처럼 말이다.
괴물의 존재는 우리가 가진 상처와 흡사하다.
어떤 상처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무의식 속에 숨어 있을 뿐이다. 그것이 탄성한계를 넘으면 수면 밖으로 튀어나온다. 어릴 적 겪은 부모의 폭행과 무관심, 소외나 고독감 등은 이성이 힘을 잃으면 언제든 "나를 잊었어?"라며 고개를 쳐든다. 그리고 그 형상은 괴물처럼 폭력적이며 사악하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시인 이규리가 주목한 것도 상처다. '저 괴물, 알고 보면 상처가 키운 것이다'는 '괴물'의 호적을 직접적으로 떼어 보여주는 대목이다. 강의 안과 밖에 웅크리고 있는 수심 모르는 덩어리들은 우리 사회가 가진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들이다.
그런데 외견상은 평화롭다. 고요한 햇살이 가득한 봄날처럼 시치미뗀다. 그래서 그것이 닥쳤을 때는 더 혼비백산한다.
과연 강두가 괴물을 퇴치한 후 모든 것이 끝난 것일까. 가장 큰 공포는 또 출몰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나온다. 언제든 친절한 오빠가, 옆집 아저씨가 목덜미에 찐득한 숨소릴 뿜어댈지 모르기 때문이다.
눈 오는 날 밤. 한강변 매점에서 차가운 총을 잡고 강두가 창 밖 한강을 주시하고 있다. 평범한 소시민이 어느 날 전사가 되어 봄날처럼 살금살금 또다시 튀어나올 '그놈'을 기다리는 것이다. 쿵덕거리는 가슴을 안고 살아야 하는 우리 모두는 강두다.
40대 남자가 엘리베이터에 들이닥쳐 열살 초교생을 폭행하고 납치하려던 사건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무시로 타고 다니던 엘리베이터는 바로 한강이고, 남자는 괴물이며, 그 초교생을 위해 몸을 던진 이웃들은 바로 강두의 가족들이다.
또 한편의 '괴물'을 실제 생활 속에서 찍고 있는 우리의 현실, 어째 모골이 송연하지 않은가?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 괴물(2006)
감독:봉준호
출연:송강호, 변희봉, 박해일, 배두나
러닝타임:119분
줄거리:한강에서 매점을 하며 아옹다옹 단란하게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 어느 날 한강에 괴물이 나타나 중학생 딸 현서(고아성)를 채어간다. 아수라장으로 변한 한강.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다. 어수룩한 아빠 강두(송강호)와 모든 것을 품는 할아버지(변희봉), 까칠한 삼촌(박해일), 양궁선수 고모(배두나)는 가족의 유일한 희망인 현서를 구하기 위해 괴물과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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