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문의 펀펀야구] 아버지 명성 지킨 김한수

입력 2008-04-04 08:56:09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란 얘기가 있다. 어떤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배치하면 일을 잘 풀어내 조직이 잘 돌아간다는 뜻이다. 맡겨두면 어려운 일도 물 흐르듯 해결해 만인이 좋아하고 걱정할 일이 없는 것이다. 가끔 뉴스에서 나오는 큰 사고가 그렇듯이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물이 고여 썩는 것처럼 서서히 무너져 가다가 결국엔 큰 문제로 이어져 낭패를 본다.

인사는 조직의 성공을 가름하는 열쇠이지만 정작 그 자리에 맞는 최고의 인물을 정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타고난 적임자란 없다. 다만 스스로 부단한 노력을 통해 존경받는 적임자가 되어 갈 뿐이다.

총알같은 타구가 날아온다고 해서 핫코너라 불리는 3루수는 반사 신경과 순발력, 그리고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는 적극적인 마인드가 필요한 자리다. 더구나 송구의 각도나 높이가 조금만 틀려도 악송구를 유발하는 지역이어서 매순간 집중력과 침착성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위치다.

김한수에게는 천부적인 3루수 자질이 잠재해 있었다. 김한근, 김근석, 김용국, 김한수로 이어져온 역대 삼성 라이온즈의 3루수는 모든 팀에서 탐을 낼 만큼 뛰어난 플레이어들이었지만 김한수만큼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켜낸 선수는 없었다. 입단한 1994년부터 곧바로 주전으로 발탁되었던 김한수는 군복부 기간을 제외하고는 2005년까지 10년 동안 3루수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여느 선수처럼 부상도 없었고 간염이 발병했던 1998년에도 철저한 몸 관리와 연습으로 극복해 철벽같이 자리를 지켰다.

돌이켜보면 14년간 삼성에서 보여준 그의 야구에는 끝없는 절제력이 바닥에 깔려있었다. 큰 키 때문에 초창기 다소 엉성했던 자세도 부단한 노력으로 탄탄하게 변모시켰고 여섯번이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실력임에도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묵묵히 수행하듯 자신이 할 일을 해냈다. 한결같은 자세는 강인한 정신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더 믿음이 가는 선수가 되었으며 팬들은 그를 '소리 없이 강한 남자'라 불렀다.

필자는 1960년대 후반 실업야구(농협팀)에서 보았던 김영복 선수를 기억하는데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가 김한수의 부친이었다. 기민한 3루수였으며 늘 송구가 빠르고 정확해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김한수는 성격도, 야구도, 심지어 등 번호(5번)도 아버지를 닮았다. 그라운드에 서면 매순간 야구에 몰입하는 끈기나 깔끔하고 과묵한 성품이며 지기 싫어하는 근성까지도 집안 내력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동안 쌓은 명성도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는 아들이라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가장 많은 끝내기 안타로 경기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해 주었던 그는 선수 생활의 마지막도 팀을 위해 미련없이 돌아서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이정표를 남겼다. 14년 동안 야구팬들에게 믿음과 즐거움을 주었던 삼성 라이온즈 역대 최고의 3루수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한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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