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영어

입력 2008-01-30 11:12:30

우리나라에 언제 영어가 처음 상륙했을까. 아마도 영어권 사람이 처음 이 땅을 밟은 날일 것이다. 그래서 '하멜표류기'로 유명한 네덜란드 사람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착한 1653년이라는 추정이 있다. 네덜란드 東印度會社(동인도회사) 소속 상선 스페르웨르호의 서기였던 하멜이 자카르타에서 타이완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중 제주도에 상륙했다. 이때 일행 36명 중 영국인 목수가 한 사람 타고 있었는데 그가 최초의 영어권 사람이 아니겠느냐는 추정이다. 하멜이 14년 만에 우리나라를 탈출하기까지 영국인 목수의 행적이 정확하게 파악되진 않지만 영어를 사용하면서 우리나라 사람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을 것이라는 짐작은 가능하다.

이후 서양 선박들의 출몰과 신미양요, 한미수호조약을 거쳐 일제 강점시대 미국인 선교사들의 활동과 영어 강습소 개설 등 시대가 흐르면서 영어는 점점 이 땅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8'15해방 이후 미군의 진주와 미군정, 이어서 발발한 6'25전쟁으로 수많은 미군과 영어권 국가 군인들이 참전함으로써 영어는 거세게 이 땅을 뒤덮었다. 초콜릿과 사탕, 강냉이가루와 분유 포대, 각종 통조림에서도 영어는 익숙하게 다가왔다. 이 시기에 우연히 미군을 따라다니다 영어를 익힌 사람들이나 영어를 잘해야 잘사는 시대가 됐다는 현실 인식을 하고 잽싸게 영어를 배운 일부 인사들은 단번에 신분 상승을 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미국과 영어는 학생들에게 희망봉이 됐다.

학교에서 영어가 국어 수학 국사를 능가하는 비중의 학과목, 입시과목으로 채용되고, 쓸 일이 별로 없는 회사조차 입사시험에 영어를 내걸어 놓으면서 급기야 영어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됐다. 또 외국 공항에서 단순한 몇 마디를 주고받지 못해서 우물쭈물하는 수모를 당하기 일쑤가 되다 보니 영어는 기가 막히고 앞이 캄캄해지는 거대한 장애물로 다가왔다. 십수년을 배워도 안 되고 돈만 먹는 비원의 과제가 됐다.

인터넷 시대에 영어는 더욱 공용화되고 있다. 영어가 국력이라는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이명박 차기 정부가 영어 교육만큼은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옳은 선택이다. 하지만 의욕이 넘쳐 전 국민을 영어의 스트레스 속으로 몰아넣지는 말아야 한다. 영어 없이도 불편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김재열 논설위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