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교육 허와 실] 영어 '쓰나미'…교육 '아노미'

입력 2008-01-28 10:21:14

(상)혼란스런 교육 현장

대통령직인수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영어 공교육 개혁안을 쏟아내고 있다. 수능 영어과목을 영어능력평가 시험으로 대체하고 2010년부터 고등학교의 영어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겠다고 전격 발표한 것이 불과 4, 5일 전이다. 28일에는 '영어 잘하면 군대 안 간다', '영어만 잘하면 교사자격증이 없어도 교사로 채용하겠다', '실력없는 영어 교사는 삼진 아웃시키겠다'는 등의 파격안이 쏟아졌다. 최근 일련의 영어공교육 정상화 방안의 허와 실을 짚어본다.

"너무 많은 정책들이 매일 쏟아져 정신이 없습니다."

28일 교육 현장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대구의 한 고교 영어 담당 교사는 "대한민국 교육에 영어밖에 없는 것 같다."라며 "영어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인수위가 불과 2년 만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다보니 교육 현장의 실정을 전혀 모르는 설익은 정책들이 남발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인수위의 영어 공교육 개혁안(2010년 고교 1학년부터 영어 수업을 영어로 진행함)은 영어 몰입교육 조기 도입에 대한 교사, 학생·학부모들의 우려에 대한 반박으로 급조된 듯한 인상이 짙다는 게 교육계의 평가다. 인수위는 영어회화가 능숙한 군 예비입대자들을 영어특기자로 학교 현장에 공익근무시키고, 교사 자격증이 없더라도 영어 실력이 뛰어나면 교실에 보내겠다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 중학교 영어 교사는 "한마디로 뭘 모르는 소리"라며 "현재 영어 원어민 교사 수업이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가르치는 방법이 서툴기 때문이다.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좋은 수업을 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인수위가 당장 2년 뒤부터 고교 영어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대대적인 교사 연수를 호언장담했지만, 이 역시 비현실적이다. 박재흥 대구시교육청 중등교육과 영어담당 장학사는 "시교육청에서 6개월짜리 영어심화 연수 비용이 1인당 1천300만 원가량"이라며 "대구 고교 영어교사가 750여 명가량인데 연수 비용만 최소 300여억 원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설령 예산이 확보된다 하더라도 이들 교사를 가르칠 만한 연수진도 태부족하다. 박 장학사는 "인수위의 영어교육개혁이 실현되는데 최소한 5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교 영어 수업시간을 늘리는 것도 문제다. 한 초교 영어 전담 교사는 "학교에는 교육과정이 있고 시간표가 있다. 영어 시간을 늘린다면 다른 과목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예·체능 과목이 희생당할 우려가 높다. 방과후학교 수업시간을 이용한다고 해도 현재 시행 중인 영어 방과후학교와 효과 면에서 뭐가 다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인수위가 영어 사교육 타파라는 취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오히려 사교육을 더 부추기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요즘 영어학원과 영어 과외교사들의 인기가 상종가를 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앞으로 토플·토익식 영어능력평가시험이 도입되고 수업도 영어로만 한다니 당장 회화 학원을 한 군데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며 "학교에서는 말하기, 쓰기 수업이 불가능하니 아이들을 학원으로 보내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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