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문의 펀펀야구] "자신감이 필요해"

입력 2008-01-25 09:20:07

연습 타격에는 엄청나게 타구가 뻗어나가는데 막상 경기 때는 모습이 다른 선수들이 있다. 선수들은 흔히 '공갈포'라고 말하는데 야구에는 의외로 이런 경향의 선수가 많다. 자질은 뛰어난데 정작 멍석을 펼쳐 놓으면 기량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이다. 미국에선 이러한 선수들을 'Four Thirty Hitter'라고 한다. 4시 반에 진행되는 연습타격 시간에는 멋지게 쳐내지만 막상 6시부터 시작되는 본 경기에서는 결과가 저조해 지어진 말이다.

김정수 삼성 라이온즈 매니저도 현역 때는 덩치에 어울리게 매년 기대주로 떠올랐다. 전지훈련이나 연습경기 때는 중·장거리 타구를 날리며 향후 중심타자감으로 꼽히곤 했다. 하지만 정작 실전에서는 타구가 외야를 넘기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결국 프로 통산 5년 동안 132번의 타격 기회에서 단 한개의 홈런도 치지 못했다. 고교 시절 이승엽과 쌍벽을 이룬 김승관도 2군 경기에서의 활약과 달리 삼성에서 머문 7년 동안 홈런 숫자는 '0'.

이런 경향은 투수에게서 더 자주 나타난다. 불펜에선 구위가 만족할 만한 수준인데 실전에만 나서면 고개를 젓게 만드는 선수가 있다. 이러한 투수들을 'White Line Fever'라고 말한다. 파울지역을 넘어 페어 지역인 흰 선만 넘으면 주문에 걸린 것처럼 병이 생긴다는 뜻. 직구가 빨라 '칼날'이라 불렸던 이용훈은 불완전한 제구력 탓에 끝내 팀을 떠났지만 불펜 피칭은 특급 수준이었다. 불펜에서 시속 153km의 강속구를 던져댔던 감병훈도 실전에선 그 구속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불펜 최강'.

기본적인 능력은 뛰어난데 연습과 실전의 결과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코칭스태프는 흔히 경험 부족을 지적한다. 젊은 선수들이 처음에 고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부진이 반복될수록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점점 실전에 설 기회마저 줄어든다.

그러면 선수들은 모처럼의 기회에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자연스레 조바심을 갖게 되는데 돌이켜보면 이 순간이야말로 평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때다. 이때 평상심을 놓치면 근육이 긴장해 정신과 몸의 일체감이 미세하게 흐트러지는데 이 상태가 늪에 빠진 것처럼 반복해서 자신을 옭맬 수 있기 때문이다.

투수 김진웅이 마무리를 맡던 시절 9회말 투아웃에서 안타를 친 주자가 2루 도루에 성공했다. 안타를 맞으면 동점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정면 승부를 피하게 됐고 급기야 연속 볼넷을 허용해 만루가 됐다. 그리고 볼카운트 2-3로 절체절명의 위기. "타임"을 외치며 권영호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달려갔다.

연신 소매로 땀을 닦아내던 김진웅에게 권 코치는 던진 말은 단 두 마디. "포수 미트 보고 비슷하게 던져. 단 전력으로 던져라." 김진웅이 전력으로 던진 공은 포수가 반쯤 일어나 받을 정도로 높은 직구였다. 그러나 그순간 타자의 배트도 허공을 갈랐다. "인간인 이상 완벽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순간의 상대만 이기면 된다." 자신감을 쌓는 방법이 담긴 권 코치의 평소 지론이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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