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야누스의 두 얼굴

입력 2008-01-17 07:38:13

1월도 어느덧 중턱을 넘어가고 있다. 유장한 세월에 어디 머리가 있고 따로 꼬리가 달려서 제 멋대로 자르고 이어 붙일 수가 있으랴마는, 사람들은 묵은 것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꿈을 맞이함으로써 또 그 세월을 버티어 가는 게 아닌가도 싶다. 때로는 사람살이에서 망각이란 희망만큼이나 눈물겨운 안간힘이고 달콤한 축복인 셈이니 말이다. 그러나 새날 새 아침은 우리에게 불쑥 주어진 장밋빛 백지수표만이 아니라, 지나온 한 해 동안 우리들이 걸어온 낮과 지새운 밤에 대한 준엄한 성적표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야누스(Janus)의 달'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는 '1월(January)'의 이름과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아시다시피 문을 지키는 수호신이자, 모든 사물과 계절의 시작을 주관하는 야누스는 앞뒤를 함께 살필 수 있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제대로 앞을 내다보기 위해서라도 찬찬히 뒤도 살펴보아야 한다는 건 아닐까? 전망이 없는 현실도 갑갑하겠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내달리는 질주 또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어느 새해 새 아침이든 새롭지 않겠냐마는, 올해는 새로운 경제 대통령을 자임하는 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맞물려서 사뭇 남다른 열기마저 느껴진다. '국민 성공시대'와 '모두 부자 되세요'라는 구호의 범람 속에 묻혀버릴 지난날의 사소한 풍경들을 문득 떠올려 본다. 매년 되풀이되는 '전공의 비인기과 외면, 악순환 그냥 둘 것인가'라는 기사와 '효성(孝誠)도 돈에 좌우되는 씁쓸한 세태'라는 박스 안의 사설 따위를 뒤적거려 보면서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일도 많고 탈도 많은데 대우는 시원찮은, 이른바 3D 업종을 지키고 있는 그들은 '국민 성공시대'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무한경쟁에서 낙오한 실패자일 뿐이다. 반면에 돈 몇 푼이 없어서 자식들에게서 외면당한 부모들은, 도리어 자식들을 '국민 성공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 길러낸 장한 부모들인 셈이다. 같은 뿌리에서 뻗어나서, 제각각 다른 가지에 열린 풍경들 앞에서 우리는 매번 곤혹스러워진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다.'라는 경구는 역설적으로, 사람은 밥을 먹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그렇듯 이 시대를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부자가 된다는 것이 비록 충분조건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단히 요긴한 밑천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모두가 부자가 되는 세상'을 향한 무한질주 속에서 문득문득 느껴지는 불안감은 혹시라도 남들에게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초조감 때문만은 아니다. 제동장치가 풀린 자동차의 질주는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곧장 생명에 대한 흉기이기 때문이다. 엔진 성능에 대한 우리들의 무한한 신뢰와 안도감은 당연히 그에 걸맞은 브레이크가 있다는 전제에서 비롯됨을 기억할 일이다. 되돌아봄이 내다봄의 발목을 잡거나 어깃장을 놓는 걸림돌이 아니라, 소중한 디딤돌이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는 1월이기를 소망한다. 건강을 지키는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활을 돌이켜 보고, 건강에 좋지 못한 습관들에는 제동을 걸어야 한다.

송광익(늘푸른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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