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시평] 대학자율의 명암

입력 2008-01-16 09:55:45

대학의 자율화 정책이 곧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 정책철학의 근간으로 등장하고 있다. 각 대학은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각 대학은 본고사를 실시해 학생을 선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대학입시의 과잉경쟁을 완화할 한 방법으로 교육의 수월성을 강조해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를 확대 공급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학자율이 공식적 정부의 정책의제로서 이명박 정부가 실천하고자 하는 정책으로 구체화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고려할 필요가 크다.

왜냐하면 한국에서의 대학교육은 단순히 시장중심의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문화적이며 역사적이고 이념적인 배분의 정의에 따라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먼저 한국에서의 대학교육은 절대적으로 국가가 운영하고 결정하는 국공립형 대학에서 진행되고 있다. 국가중심주의에 따라서 고등교육이 결정되고 시행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우수학생은 국공립대학으로 집중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대학의 자율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많은 의문점이 있다. 때문에 학부모나 수험생 등은 대학자율화 정책에 많은 의구심을 지닌 채 지켜보고 있다. 만약 실패할 가능성이 큰 대학정책에 대한 원망과 불신은 고등교육만이 아닌 그 정권의 무능한 정책결정과 통치력과 연계해 판단될 수 있다.

본질적으로 국가가 경영하고 결정하는 국공립대학의 대학자율화는 입시와 교육의 질과 양을 결정하는 방법을 대학에 위임할 것인가, 아니면 방임할 것인가, 위임한다면 수학능력시험과 학교 내신성적·본고사 등을 어떻게 조정하고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점 등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이것을 각 대학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면 자율이 아닌 방임이다. 왜냐하면 국가가 근원적으로 대학교육을 책임져야 하는 국공립대학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 같은 대학에 우수학생들이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한국의 대학교육은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 지역으로 집중되고 있다. 소위 일류대학과 일류학생이 서울로 무작정 몰려 있다. 이와 같은 지역 간의 엄청난 불균형의 현실에서 대학교육의 자율화란 복잡하고 다양한 이념과 가치가 지배하는 대학교육을 어설픈 시장경제원리로만 해결하고자 하는 아마추어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낸다는 것이 한국사회의 숙명적 원리다. 사회적이고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자면 무조건적으로 서울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사이버공간으로 세계를 넘나드는 지구촌사회에서도 여전히 철칙으로 통하고 있다.

물론 많은 학생들이 전 세계적으로 우수한 대학으로 진학하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서울 중심이다. 따라서 대학입시를 시장의 자율기능에만 맡긴다면 계단식 논에 물을 가두는 현상과 같은 일이 발생할 것이다.

즉 질적으로뿐만 아니라 양적으로도 가장 먼저 서울 중심의 일류대학을 채우고 또 채우면서 나머지는 조금씩 흘러 변방의 대학을 채우게 될 것이다. 다행이 대학 진학 학생이 많으면 문제가 없지만 지금과 같이 지방대학이 위축되어 있는 현실에서 볼 때 대학자율화는 비수도권 대학에는 그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정책이다.

이것은 국가의 인재개발뿐만 아니라 교육에 기초하는 산업과 성장, 균형발전 등 국가의 모든 정책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면 대학교육의 자율화정책에 스스로 포획되어 정책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정치적 무능력으로 이어져 국민들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의 대학교육은 단순히 교육 그 자체가 아니라 교육과 연계된 직업시장, 인력충원, 대학연고에 의한 사회적 계층망의 형성, 심지어 혼인결정에 이르기까지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때문에 대학교육은 경제적인 수요와 공급의 원리만이 아니라 가치와 이념과 문화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종합적이고 균형적으로 판단하고 이에 따라서 자율정책의 구체적 사업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대학교육을 통한 사회적 배분의 정의를 실천하는 중요한 덕목이고 국가경영의 철학이다. 이명박 정부가 섣부른 경제 원리로 대학교육의 자율정책을 잘못 집행하면 기타 중요한 국가정책을 추진할 정책동력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이해영 영남대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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