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다] 다시 보는 천재의 편린

입력 2008-01-12 07:57:38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선/허문순 옮김/하서출판서 펴냄

"프랑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미국의 영화감독 우디 알렌이 자신의 영화 '헐리우드 엔딩'의 마지막 장면에서 외친 말이다. 극중에서 한물 간 영화감독으로 분한 그는, 자신의 형편없는 영화가 의외로 프랑스에서 고급예술로 대접을 받자 그렇게 너스레를 떤 것이다. 물론 그것은 가벼운 농담이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절박한 진실이기도 하다. 실제로 자국 내에서 인정받지 못한 영미권의 예술가들이 오히려 유럽 대륙에서 주목을 받는 일은 흔하다. 여기에서 이야기할 사람도 따지고 보면 "프랑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인" 작가이다.

에드거 앨런 포는 한마디로 말해 '또라이'였다. 그는 도박중독자에다가, 아편쟁이였으며, 14세짜리 아내와 결혼 후 첫 결혼기념일 이전에 바람을 피운 파렴치한이었다. 술꾼은 친구라도 많지만 이 작자는 거의 모든 인간관계를 싸움으로 끝내는 자였다.

그런 그를 '천재'라 부르며 감탄해 마지않았던 자가 동시대의 유명한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였다. 그는 포의 작품 속에서 보수적인 미국의 청교도들이 지레 손사래를 치던 기괴한 매력을 정확히 읽어냈다. 보들레르가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린 단편 '검은 고양이' 등 수십 편의 단편과 시들을 번역하여 프랑스에 소개하자, 그 작품들은 프랑스의 문단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보들레르의 사후 약 100년이 지나 또 한 사람의 프랑스인이 포를 화려한 화두로 끄집어낸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포의 단편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미나를 자신의 역작 '에크리'에 담으면서, 이 살아생전에 냉대받던 '또라이' 작가의 체면을 치켜세워 준다.

몇몇 프랑스인들은 포에게 "다행"을 주었지만, 포는 세상에 더 많은 것을 주었다. 포의 추리소설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이 없었다면 아서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를 낳지 못했을 것이고, 또 도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에르큘 포와로도, 명탐정 코난도 없는 심심한 세상에 살 것이다. 그의 작품 '황금 벌레'는 오늘날의 오락영화 '내셔널 트레져'의 흥분을 낳았고, '낸터킷의 아더 고든 핌 이야기'는 '캐러비안의 해적'과 '킹콩'을 젖 먹여 키웠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포 작품의 '재미'와 '흥분'을 다시 찾아 읽을 일이다.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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