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예술을 탐하다] ②조각가 정세용의 별이 뜨는 작업실

입력 2008-01-11 07:17:53

'꿈의 공간'이 이젠 '향수의 공간'

'별은 리얼리스트조차 숭상의 대상이었다. 별은 꿈꾸는 것이다. 나 역시 별을 세곤 했다. 하지만, 별에 대한 기억은 남들과 같지 않다.'(고은)

맑은 밤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별들. 별은 누구에게나 동경의 대상이다.

무한한 우주 공간을 채우고 반짝이는 별들은 바로 우리의 꿈이며, 우리가 잃어버린 동심이자, 바로 우리가 염원하는 향수이기도 하다. 경북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조각가 정세용(37)의 작업실엔 밤이면 밤마다 별이 뜬다.

강의로 고단한 몸을 이끌고 돌아올 때면 쳐다보곤 하는 하늘, 마흔을 바라보는 조각가는 그때마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빛으로 지친 마음을 씻는다. 별은 이따금씩 정세용의 인생시계를 어린 시절로 되돌린다. 미·소 냉전 체제가 낳은 엉뚱한 결과물인 '우주 개척 전쟁'.

1970년대는 양국의 우주 탐사 경쟁 뉴스가 넘쳐났다. 라디오를 틀어도, 텔레비전을 켜도 온통 우주 얘기였다. 어린 정세용에겐 우주의 모습을 담은 만화도, 우주 판타지 영화 '스타 워즈'도 지금껏 뇌리 속에 박혀버린 추억이다.

이 추억이 고스란히 모눈지 위의 설계도로 이어지는 것이다. 철판의 모양과 크기를 정하고, 그 위로 뚫어야 할 구멍의 위치를 계산해 표시한다.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별밤의 풍경이 고스란히 내 것인 이 작업실이야말로 작가가 예술적 영감을 얻는 '꿈의 공간'이다.

이 꿈이 완성되는 곳은 경북대 조소동 주조실. 겨울 차가운 기운이 가득한 이곳에서 그는 기술공이 된다. 48철판(120㎝×240㎝)에 구멍을 표시하고 그 위로 송곳을 대고 망치질을 한다. 그리고 전기 드릴로 구멍을 낸다. 철판을 굽히거나 잘라서 연마를 하고 도색을 한다.

이 철판을 조립해 용접을 하면 완성되는 작품. 어두운 공간에서 작품 속 전구와 연결된 콘센트를 꽂는 그의 작품은 무한의 세계로 나아간다. 전구는 하나의 태양이 되고, 무수한 구멍 사이로 빠져나간 빛은 온 전시장에 수많은 별빛을 뿌려 댄다. 유년의 기억, 소년의 꿈이 예술을 통해 승화되는 순간이다.

"어린 시절 옥상에서 어른들 무르팍에 누웠을 때, 캠핑을 갔을 때 바라본 밤하늘은 낮에 보는 세계와는 다른 말 그대로 '별천지'였습니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은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했지요." 정세용이 어린 시절 라디오와 TV를 통해 본 '놀이터'와 같았던 우주(혹은 공간·space). 그것이 이제는 추상 조각으로 어린이에겐 '꿈의 공간'을, 어른에겐 '향수와 휴식의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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