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대구도 세계도 '성실로 평가받는 일터'

입력 2008-01-02 08:54:20

20여 년 전 두 사람의 출발은 화려하지 않았다. 한 사람은 33m²짜리 철공소 사장이었고, 한 사람은 중소 증권사의 말단 직원이었다.

하지만 2008년을 여는 새해 첫날. 두 사람은 모두가 가장 부러워하는 '화려한 길'의 출발점에 서 있다.

전세계에서 향후 가장 전망이 밝은 분야라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상대로 뛰면서 '오일 달러'를 거머쥐고 있는 최경식(55) 금강밸브(대구 성서공단) 대표.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사는 사람들이 밀집한 서울 강남을 무대로 금융영업을 하게된 김병영(49) 현대증권 상무.

나란히 지역 영남대학교 출신. 지역에서 배우고 자라 '가장 촉망받는 곳'으로 향하고 있는 이들은 올해 '대구·경북 사람의 저력'을 보이겠다고 했다.

◆오일 달러는 내 것

1980년, 고시공부를 하다 대구 3공단에서 철공소를 창업한 최경식 대표. 그는 원유 및 천연가스 시추장비에 들어가는 볼밸브(파이프라인에서 개폐작용을 하는 밸브)로 눈을 돌린 뒤 국내에서는 따라올 업체가 없는 독보적 회사를 만들어냈다. 파는 물건의 95%가 해외로 나간다.

엑슨모빌, 텍사코, 세브론, 러시아의 가즈프롬, 사우디바아라비아의 아람코 등 이름만 들어도 '오일 달러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글로벌 석유개발업체가 금강밸브를 인정, 납품을 허락했다.

최근 몇년간 국제 유가 급등의 영향으로 판로가 크게 넓어지면서 2004년 무역의 날에 1천만 달러 수출탑을 받은 이래 지난해에는 3천만 달러 수출탑, 올해에는 5천만 달러 수출탑이 무난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석유개발업체들이 과거엔 경제성이 없었던 유전이나 천연가스전을 시추하기 위해 바다든, 육지든, 전세계 모든 오지로 달려가면서 판로는 무한대로 팽창하고 있다. 최 대표는 향후 3년내 1억 달러 수출탑이 거뜬하다고 보고 있다. 놀라운 성장세다.

"올해는 그야말로 세계적 업체로 성장하기 위해 성서공단 본사에 연구소를 만듭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대구 달성2차단지에 1만 6천529m²규모의 제3공장을 짓습니다. 공장 3곳의 규모를 합하면 이제 3만 3천58m²가 됩니다. 2008년은 33m²짜리 공장으로 시작한지 꼭 28년만에 공장 규모가 1천 배로 성장하는 해죠."

금강밸브는 부품소재업체지만 독자 브랜드를 갖고 있다. 세계 원유·가스개발 시장을 '꽉 잡고' 있는 미국에만 'KUKA'라는 독자 브랜드로 1천만 달러 이상을 판다. 현재의 기술력으로도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사업이 탄탄대로만 달려왔던 것은 아닙니다. 가정용 도시가스 시설이나 석유화학단지에 들어가는 산업용 밸브 등 내수시장에 안주하던 중 경쟁업체 추격을 받으면서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적자 투성이 회사로 전락했죠. 1994년엔 그동안 벌었던 돈이 모두 바닥났습니다. 좌절했죠. 그러나 발만 동동 구르지는 않았습니다. 세계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수출기업으로 체질을 완전히 바꾼 2000년대 들어서는 원유·가스시추에 들어가는 밸브로 진출했습니다."

그는 목표를 아직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2008년은 그 목표를 향해 큰 걸음을 옮기는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성서공단에서 우리 회사 직원들만큼 영어 구사능력이 뛰어난 회사는 없다고 자신합니다. 그리고 올해 연구소 개소를 통해 기술력을 더 높여 몇년 안에 우리 제품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1위인 이탈리아를 밀어내고 세계 1등이 될겁니다." 그는 자신있다고 했다.

◆강남에서 뜁니다

김병영 현대증권 상무는 '기록의 사나이'다. 1987년 서울증권 대구지점에 '말단 사원'으로 들어간 뒤 2차례 회사를 옮기면서 지난해말 꼭 20년만에 현대증권내 최연소 상무 자리에 오른 것.

더욱이 그는 올해 또다른 기록을 쓴다. 대구에서만 영업을 해온 김 상무는 2일부터 대한민국 최고, 아니 세계 유명도시 부자들과 겨뤄도 자산 총액에서 손색이 없다는 서울 강남을 책임지는 영업본부장으로 발령받아 영업을 시작했다. 대구에서만 영업을 하다 서울 강남의 영업 책임자로 진출한 경우는 없었다는 것이 증권업계의 얘기.

현대증권이 그에게 강남영업본부장 자리를 맡긴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는 1997년말 현대증권 대구지점장으로서 이 증권사에 입사한 이후 단 한번도 지점 영업실적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대구·경북을 총괄하는 본부장에 승진한 이후에도 경제사정이 나빠 모든 '본부장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대구·경북의 본부장으로서 전국 영업실적 3위를 기록했다.

"서울 강남은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들이 있는 동네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금융영업인력이 근무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두려운 마음이 앞서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의 가장 큰 장점인 '성실한 영업'으로 승부한다면 승산이 있습니다. 20년 전 처음 증권사에 들어왔을 때 거래한 손님들 중 20여 명이 아직도 제 곁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두자릿수의 사람들이 20년간 믿어온 사람이라면 강남이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영업맨들의 기본이라 불리는 '술'을 그는 전혀 못한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비록 못하지만 그는 자신이 가장 잘 하는 부분에 집중했다.

"말단 직원때는 물론, 임원에 오른 이후에도 회사에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은 접니다. 가장 늦게 집에 가는 사람도 접니다. 남보다 먼저 일어나 모든 신문을 죄다 읽고, 남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20년동안 단 한번도 잊지 않았던 철칙입니다. 올해 도전하는 서울 강남에서의 영업도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정확한 정보 획득을 통해 고객들의 수익을 내준다면 제가 지금까지 어디에서 영업을 해왔든, 손님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을 겁니다."

그도 한 때 좌절을 했었다. 서울증권을 다니다 스카웃돼갔던 동방페레그린증권이 도산했을 때였다.

"회사가 도산했다는 이유로 다시 잡은 직장(현대증권 대구지점장)으로 갈 때는 한 직급이 강등되기도 했습니다. 억울하기도 했지만 불만을 갖다보면 한이 없습니다. 말로 불만을 나타내기보다는 실력으로 승부하는 것이죠. 결국 옮겨가자마자 바로 1등을 따냈습니다. 올 연말에는 서울에서 '대구·경북 사람 대단하네'라는 말을 꼭 듣겠습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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