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60주년 변화상]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우뚝'

입력 2008-01-02 07:00:00

상전벽해(桑田碧海). 건국 이후 60년을 돌아보면 사회의 변화상은 어떤 수사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하늘 아래 변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역사는 질곡(桎梏)이었고 격동(激動)했다. 1948년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 1950년 한국전쟁, 1961년 5·16군사쿠데타,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과 신군부 등장, 1987년 6·10민주항쟁, 1997년 외환 위기,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대통령 당선….

그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했던 우리의 삶은 풍요 속에 콜레스테롤을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순종이 미덕이었던 여성은 경제활동의 주축으로 우뚝 섰고, 거리에는 자동차가 넘친다. 한류(韓流)는 세계를 흔들고, 한국인 반기문이 유엔사무총장이 됐다. 우즈베키스탄의 많은 젊은이들은 대우자동차와 삼성휴대전화와 LG냉장고를 갖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고 하고 있다.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우리의 근현대사는 남북분단을 빼놓고 설명되지 않는다. 그 근저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치열한 경쟁이 있다. 옛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시장경제 도입, 남북한의 현저한 경제격차를 근거로 보면 두 주의 간의 60년 투쟁은 자본주의의 승리로 귀결됐다고 할 수 있다.

17대 대선을 두고 대통합민주신당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대결이라고 규정했다. 15대, 16대 대선도 비슷했다.

이들 두 세력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눈이 현격하게 다르다. 한쪽에서는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11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자랑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단독정부 수립으로 분단을 고착화하며 태어난 대한민국은 통일을 이루기 전에는 어떠한 성공도 미완이라고 주장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극단적이다.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위대한 지도자라는 시각과 쿠데타와 인권 탄압으로 철권을 휘두른 독재자라는 시각이 충돌한다. 이들은 한국전쟁의 책임에 대해서도 남침을 한 북한과 미국의 패권주의로 다르게 본다. 두 세력은 또 이승만을 국부로 보는 눈과 김구를 숭앙하는 다른 눈을 가졌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이제는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 가야 한다."며 과거를 산업화와 민주화, 미래를 선진화로 구분했다. 이념 차이는 60년 세월 동안 형식과 내용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엄존해 극복의 대상이 된 셈이다.

◆얼마나 달라졌나='은반의 요정' 김연아가 2007 그랑프리 파이널 챔피언이 됐다. 프로축구선수 박지성은 프리미어리그 명문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세계적인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뛰고 있다. '마린보이' 박태환은 국제수영연맹 3개 대회 연속 3관왕을 차지했고, '골프여제' 박세리는 LPGA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꿈도 꾸지 못할 기적. 윤택한 생활이 가져온 식생활 변화가 체형을 바꿔 놓아 가능해진 일일 것이다. 체형이 바뀌었다는 것은 남한보다 머리 하나는 적은 북한 청소년을 보면 실감하게 된다. 통계로 보면 변화는 더욱 뚜렷해진다.

식생활 변화는 국민 수명을 1971년 남자 59세, 여자 66세에서 2005년 남자 75세, 여자 82세로 34년 동안에 15, 16세가량 연장시켰다.

수출은 1948년 2천200만 달러에서 2006년 3천256억 달러로 무려 1만 4천794배 급증했다. 2006년 국내총생산(GDP)은 8천874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GNI)은 1만 8천372달러로 1953년(GDP 13억 달러, 1인당 GNI 67달러)과 비교해 각각 683배, 274배 증가했다. 이에 따라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수출 2.7%, 수입 2.5%로 세계 10위권 교역국이 됐다. 여기에는 세계1위인 선박, 자동차, 반도체가 한몫했다. 특히 삼성, LG, 현대, 기아의 활약상은 눈부시다.

경제성장과 가계소득의 증대는 아파트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친구로부터 휴대전화를 받고 자가용을 타고 가서 뮤지컬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게 했다. 도시근로자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이 1963년 5천990원에서 2006년 344만 원으로 575배 증가했다.

주택보급률은 1965년 81.3%에서 2004년 102.2%로 100%를 넘었다. 인터넷 활용가구의 비중은 2005년 기준 92.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했다. 자가용은 1970년 100가구당 1대꼴이었지만 2005년에는 10가구당 9가구 이상이 보유하고 있다. 유선전화 가입자수는 1949년에는 1천 명당 2명꼴인 4만 1천 명이었지만 2004년에는 2명당 1명꼴인 2천287만 1천 명으로 늘었다. 휴대전화는 2004년 현재 1천 명당 758명꼴인 3천658만 6천 명이 보유하고 있다.

학력 수준 또한 크게 상승해 1947년에는 초등학교 졸업 이하가 95%로 대부분이었고 대학교 졸업 이상은 0.6%에 불과했지만 2005년에는 초교졸 이하는 19.1%로 준 반면 대졸 이상은 31.4%로 증가했다. 2003년 OECD의 국제학력평가 결과 우리나라 학생들은 읽기(2위), 과학(3위), 수학(2위) 실력 모두 최상위 수준을 기록했다. 병·의원 수도 1953년 4천306개에서 2004년 4만 7천378개로 11배로 늘었다.

부정적이거나 아직 부족한 부문도 없지 않다. 사교육비는 2003년 기준으로 OECD회원국 중 1위를 차지했다. 1인당 공공 보건지출은 2004년 기준 591달러로 OECD 회원국 중 26위에 그쳤고, GDP 대비 문화·여가 지출 비중은 4.4%로 19개 회원국 중 18위를 차지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와 이혼급증, 양극화 확대 등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부상했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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