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9월 22일 오후 9시33분경 대구시 삼덕동 2가 미국문화원 정문 앞에서 폭발물이 터져 대구 영남고등학교 1학년생인 허병철 군이 현장에서 숨지고 대구 중부경찰서 김철호 순경 등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사고로 미 문화원 건물과 인근 한국은행 대구지점 현장에서 100m 떨어진 경북의대와 의대부속병원 등의 유리창 500여 장이 깨졌다. 수사당국은 1980년 12월 광주 미공보원 및 1982년 3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에 이어 발생한 미문화원 사건이라는 점을 중시하고 북한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했다. 당시 사건현장에 있던 허 군 친구의 증언에서도, 경찰이 간첩의 소행을 전제로한 강력수사로 인해 곤혹을 치렀다고 한다.
사건은 오후 9시25분경 숨진 허 군이 감색 천 가방을 사고현장에서 발견, 300m 떨어진 대구시경 정문 근무자에게 가지고 와서 신고했다. 또 허 군이 미 문화원 앞에는 큰 가방이 하나 더 있다고 해서 관할 중부경찰서에 연락, 김철호 순경이 허 군을 데리고 미 문화원 현관 앞 계단에 도착, 허 군이 가방을 드는 순간 가방이 터졌다.이 사건은 1983년 12월 8일 다대포 해안에서 생포된 진충남과 이상규 등 2명의 생포간첩 증언을 인용, 북한 소행임을 최종 확인됐다.
▶ 1948년 반민족 행위 처벌법 공포 ▶1964년 김두환 의원, 국회 오물투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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