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장을 정리하는데 접힌 백지 한 장 나온다
펴 보니 아무 글자도 없다
바닥 깊이 백지 한 장을 감추고 싶던
그때가 언제였는지
다글다글 싸놓았던 상처난 말들이 사라지고 없다
서랍은 백지 한 장을 가슴 밑바닥에 깔아두고
한때 나무였을 때, 꽃 피웠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면
무슨 말이라도 쓰고 싶지 않았을까
어떤 말들이 저절로 쓰여지고 지워질 동안
오래 달가락거렸을 텐데
봄여름가을겨울, 내 허물이 쌓여만 갔다
바닥까지 손이 닿지 않았다
벌써 버려야 할 것들이었다
펼쳐진 백지 한 장
바닥까지 감추고 싶던 내 마음, 다시 접는다
상처 난 말들은 내 옷에 스며들어
그 옷을 입을 때마다 나를 건드릴 것이나
마음은 고요해지겠다
좀약 싸두었던 종이 한 장, 이리 깨끗한 걸 보니
한밤중 쩡쩡 가구들 몸 뒤트는 소리가 심심해서 켜는 기지개인 줄 알았다네, 이 시를 읽기 전에는. 그렇구나. 가구도 한때는 나무였구나. 잎 내밀고 꽃 피웠던 한 그루 나무. 성장통을 앓았던 젊음의 신열과 방황, 그때를 기억하는 나무들의 중얼거림. 그것이 가구의 척추를 삐꺽거리게 만들었다 그 말이지.
하긴 우리도 한때 꽃 시절이 있었지. 백지처럼 순결했던 영혼, 거기에 하루치의 허물과 상처를 기록하며 지새웠던 젊은 시절. 그 허물과 상처의 무게 때문에 우리의 눈빛이 이만큼이나 이슥해질 수 있었으니. 이를테면 허물과 상처가 좀약이 되어주었다는 말씀.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할 일은 순결 강박은 윤리가 될지언정 좋은 예술이 되기 힘든다는 사실. 장옥관(시인)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