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 반영·논술…사사건건 대립
"교육부와 대학의 입시를 둘러싼 다툼은 '잡을 생각도, 잡힐 생각도 없이' 적당한 거리에서 쫓는 시늉만 하는 술래잡기라고 보면 됩니다. 학생과 학부모, 학교들만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느라 골병이 드는 거죠."
2008학년도 대입제도는 내신 반영비율, 논술고사 실시 방법과 비중 확대, 수능 우선선발 전형 등을 놓고 기본안이 나온 2004년 이후 지금까지 사사건건 교육부와 대학 사이에 갈등을 불러왔다. 최근에는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30% 미만으로 발표한 대학에 대해 교육부가 제재하겠다고 밝히면서 양측의 골이 다시 깊어졌다는 이야기도 파다했다.
그러나 입시전문가들은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갈등"이라고 지적했다. 작년에 10% 미만이던 주요 대학의 내신 실질반영비율이 20% 이상으로 확대됐다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데, 다툴 일이 뭐냐는 얘기다.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교육부가 내신 실질반영비율 계산 방법으로 제시한 방식 자체가 대학들의 기존 산출 방법과 달라 비교가 무의미하다."며 "교육부 역시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드러난 비율만 갖고 떠들어대니 황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8학년도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지난해 4%대에서 17.96%로 높였다는 한 대학은 지난해의 산출 방법으로 계산하면 3%로 오히려 떨어진 것으로 나온다. 지난해 11~12%로 비교적 반영비율이 높았던 또 다른 대학은 이번에 22%대로 높였다고 하는데 지난해 산출 방법으로 하면 역시 3.6%로 뚝 떨어진다. 이밖에 실질반영비율을 20% 이상으로 높였다는 상당수 대학들도 하나같이 10% 이하로 계산이 나온다.
이영덕 대성학원 평가이사는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높였다고는 하지만 올해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능"이라며 "수험생들은 여러 가지 소문에 현혹되지 말고 수능 준비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교육부와 대학 사이에 왜 이런 '술래잡기 시늉'이 계속되는 것일까. 한 대학 관계자는 "교육부가 필요한 건 명분이고 대학이 원하는 건 실리이다 보니 서로 적절한 선에서 호통치고, 반발하고, 으르렁거리다가 합의하는 일이 관행이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도 당초에는 내신에 비중을 둔다는 방침만 있었는데 교육부가 50%니 30%니 규정하고 나선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교육부는 2008 대입제도 홍보에 나서면서 '학생부 전형 비중 50%'를 대대적으로 떠들었으며, 올 들어 실질반영비율이 문제가 되자 다시 50%로 높이라고 했다가 30%로 낮추는 등 무원칙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대학들은 이런 맹점을 이용해 2008 대입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대학이 선발의 자율권을 휘두를 수 있는 여지를 넓히는 데 힘을 쏟아왔다. 교육부가 '학생부 전형 비중 50%'를 떠들고 나오자 얼마 뒤 서울대부터 '수능 자격고사 활용, 논술 위주 전형' 방안을 들고 나왔다. 주요 사립대들도 일제히 대학별 고사 강화를 부르짖고 나서는 통에 삽시간에 온 나라가 논술 광풍에 휩싸였다.
교육부가 대학별 고사의 본고사화를 강력히 제재하겠다고 나서자 대학들은 아예 수능우선선발전형을 대폭 확대한 전형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부와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둘러싼 힘겨루기 상황도 대학이 편한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번 수시2학기를 보면 상위권 주요 대학들은 마치 짠듯이 내신, 수능, 논술이 각각 핵심 요소가 되는 전형방법을 만들어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다.
2008 대입제도 개선안이 발표된 지 꼭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이다. 교육부와 대학 사이의 다툼이 단지 양쪽 내부의 일로 끝난다면 관심을 크게 둘 이유가 없다. 하지만 교육부와 대학의 발표 하나하나에 전국의 고교와 고교생, 학부모, 심지어 중학생까지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문제다. 한 고교 교사는 "내신전문학원, 논술학원, 수능대비 입시학원을 번갈아가며 몰려다니느라 3년을 보낸 학생들이 스스로를 '저주받은 89년생'이라고 부르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게 더 문제"라고 말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2004. 4=교육혁신위 대입제도개혁특별위원회 발족
▶2004. 8=수능 등급제, 학생부 등급제를 골자로 한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 시안 발표
▶2004.10=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 확정 발표
▶2005. 6=서울대 등 2008 입시 기본방향 발표, 논술고사 비중 확대 및 통합교과형 출제 방침
▶2005. 8=교육부 논술고사 기준 및 심의 계획 발표
▶2005.12=7개 수도권 사립대 2008 전형계획 발표, 대학별 고사 비중 강화
▶2006. 9=대학별 전형계획 주요사항 발표
▶2006.11=교육부 논술교육 내실화 방안 발표
▶2007. 2=고려대 등 수능우선선발전형 등 계획 발표
▶2007. 3=대교협 전국 4년제 대학 전형 주요사항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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