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꼬리 치날리어 세운 산새 걸음걸이-정지용②

입력 2007-09-04 07:22:24

지용은 우리 현대시사에서 언어에 대한 자각을 각별하게 드러낸 시인이다. 1920년대까지의 대다수 시인이 감정의 분출에 의거하여 본능적인 시를 썼다면 지용은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선명한 심상과 절제된 언어로 포착해 내는 시를 쓴다. 다음은 지용의 감각적 표현의 극단을 보여준다.

돌에 / 그늘이 차고 // 따로 몰리는 / 소소리바람. // 앞서거니 하여 /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 종종 다리 까칠한 / 산(山)새 걸음걸이 // 여울 지어 / 수척한 흰 물살, // 갈갈이 / 손가락 펴고. // 멎은 듯 / 새삼 듣는 빗낱 // 붉은 잎잎 / 소란히 밟고 간다. (정지용, 전문)

는 정서의 주체인 화자가 작품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채 자연 현상의 묘사로만 그친다. 완벽한 이미지시이다. 시 어디에도 감정과 정서의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전체가 8연으로 되어 있는데, 의미를 중심으로 다시 나누면 1·2연, 3·4연, 5·6연, 7·8연으로 묶을 수 있다. 그러한 묶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분했다. 1·2연은 비 내리기 직전의 모습이다. 비가 내리기 직전, 돌에 그늘이 내리는 모습과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을 드러낸다. 3·4연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그렸다. 비가 내리는 모양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꼬리 치달리어 세우고 종종걸음을 걷는 산새 걸음걸이라고 묘사한 것은 이미 시의 경지를 넘어서 있다. 이미지를 사용하여 묘사하는 시작(詩作)의 극치를 볼 수 있다. 5·6연은 빗물이 모여 여울이 되어 흘러가는 장면을 묘사했다. 수척한 흰 물살이라 했고 그 물살의 모습을 손가락을 갈갈이 편 모습이라고 했다. 놀랍다. 7·8연은 비 내린 다음 다시 비가 내리는 장면이다. 멎은 듯하다가 다시 떨어지는 비는 이미 내린 비 때문에 떨어져 내린 잎을 밟는다. 이미지시의 끝을 보여주는 멋진 작품이 아닌가.

여전히 비가 내린다. 모두 생가 앞마루에 걸터앉아 생가 안내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생가는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모든 방문은 항상 열려 있다. 곳곳에 정지용의 시를 걸어놓아 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도 흐뭇하다. 에 나오는 풍경을 위해 방안에 배치된 소품 질화로와 등잔도 보인다. 마당 한쪽엔 옛날 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우물 안쪽에는 거미줄로 가득하다. 우물 옆 돌담에는 돌담을 타고 오른 박꽃이 한창이다. 박 줄기는 지붕에까지 오르고 있다. 작은 박도 몇 개 달려 있다. 비에 젖은 박꽃이 예쁘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하다. 안채와 사랑채는 마주 보고 있으며 그 사이의 마당은 작고 아담하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사랑채 뒤로 난 사립문으로 텃밭으로 나갔다. 이슬비 속에 가지각색의 들꽃이 피어 있고 작은 물레방아도 보인다. 물레방아 아래에는 아주 작은 실개천을 만들었는데 다소 인공적인 느낌이 들어 어색하다. 텃밭 한쪽에는 지적인 얼굴을 하고 책을 든 지용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대리석으로 높게 단을 만들어 그 위에 동상을 놓았다. 실개천으로 난 사립문을 통과하여 실개천으로 나갔다. 실개천은 도심을 흐르고 있는데도 여전히 맑다. 실개천 가에는 달개비꽃과 개망초꽃이 만발해 있었다. 어디선가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울음을 우는 소리,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 지용이 가족과 함께 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