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받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행복, 그게 뭔데?(베르트랑 페리에 글/낮은산 펴냄)'를 읽다 여러번 책을 덮을 뻔했다. 부모의 무자비한 폭력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는 평범한 아동소설인 줄 알고 책장을 넘기던 기자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소년의 말대로 아주 그럴싸한 이유로, '늘 그렇듯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시작하는 폭력은 끔찍한 형태로 도를 더한다. 참고 참았던 소년이 마침내 폭발해 자신을 학대하는 엄마에게 손찌검과 발길질을 해대는 마지막 장면은 후련하다기보다 무섭다. 학대받는 당사자인 아이가 1인칭 화자가 돼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에 마치 나 자신이 학대의 피해자가 된 듯한 막막함과 참담함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래서 더 무섭다. 도대체 이 소년의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주인공 소년은 만 열네 살.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가정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소년은 언제부터인가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져 버렸다.' 서로 험한 말을 해대던 부모는 소년에게도 점점 자주 험한 말을 했다.
피우면 어떤지 알고 싶어서 담배를 처음 피우고 돌아온 날, 부모의 입에서는 믿기 힘든 험한 말들이 튀어나오고 피할 수 없는 손찌검이 쏟아진다. 처절하게 무너진 자아 존중감과 부끄러움, 막막함. 결국 소년은 술과 담배에 빠져들지만, 부모들의 매타작만 이어질 뿐이다. 배우자에 대한 분노까지도 아들을 때리는 것으로 푼다. 소년의 마음을 헤아려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 소년은 책을 훔치기도 하고, 혼자만의 상상으로 포르노를 쓰기도 한다.
이 책의 원제는 역설적이게도 '해피 엔드'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은 그렇지 않다. 소년은 결국 폭발하고 어딘가에서 심리 상담을 받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나간다.
프랑스인 작가가 시민단체들로부터 사례를 접수해 쓴 픽션이지만,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 주변에서도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전국 43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2002년 4천111건에서 2006년 8천903건으로 4년만에 두 배 증가했다고 한다. 알콜 중독에 걸린 부모를 보며 자신도 술에 쩔어 지내는 아이들처럼 부모의 학대를 받고 자라난 아이들은 또다시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책 말미의 추천사가 긴 여운을 남긴다. '아동을 학대로부터 보호해야지 아동학대를 다루는 소설책의 관점이 적나라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그 책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소간의 불편함을 누르고 이 책 읽기를 권하는 이유다.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유일한 치유책인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한 어른들의 몫은 과연 무엇일까.
▶'행복, 그게 뭔데?'의 주인공 소년은 부모로부터 끔찍한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에 시달린다. 가정 내에서 폭력이 거듭되는 근본적인 잘못은 소년에게 있을까, 부모에게 있을까.
▶책 마지막 부분에서 한 상담기관에 맡겨진 소년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다고 말한다. 학대받는 소년이 아픈 기억에서 회복되기 위해 글을 쓰기로 한 이유는 뭘까.
▶우리나라에서도 관련법이 개정돼 아동 학대 사실을 발견한 교사, 의사들은 관련기관에 반드시 신고를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신고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유가 뭘까.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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