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 수술…셋방서 쫓겨나 여관 전전
"암 투병 중인 아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직장에 매여 있을 수만 없었습니다.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면서 아내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는 것이 큰 고통이네요. 사글셋방에서 쫓겨나 여관에서 산 지 벌써 1년이 지났고, 여관비도 몇 달이 밀린 상태입니다. 돈이 없어 작은아들은 고등학교 입학을 1년 늦췄습니다. 못난 남편이자 아비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지만 뚜렷한 대책이 보이지 않네요."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유방암으로 입원 중인 아내 박명순(40·가명) 씨의 침대 곁을 지키고 있는 김성민(40·가명) 씨. 27일 병실에서 만난 그는 머릿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아내의 머리카락을 고이고이 쓰다듬고 있었다.
김 씨는 3년 전, 김 씨의 어머니가 노환으로 세상을 등졌을 때 발인을 앞두고 아내가 젖망울이 잡힌다는 얘기를 불쑥 꺼냈다고 했다. 병원 장례식장에서 눈 한 번 붙이지 못하고 일을 치러낸 아내에게 "별거 아닐 테니 약 먹고 망울을 삭혀보자."고 짐짓 아무 일도 아닌 척했던 것이 이들 가족에게 불행의 전초가 됐다. 아내는 대구 팔달시장 인근의 한 작은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았고 왼쪽 가슴이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 후 3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암세포는 왼쪽 어깨와 오른쪽 가슴과 척추로까지 전이됐다.
"병이란거, 암이란거 정말 우리들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안경 만드는 공장에서 현장 책임자로 있을 때였지요. 자꾸 자리를 비우니 회사에서도 싫어하는 눈치고, 한창 공부해야 할 아이들에게 수발을 맡길 수도 없어 그만뒀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봐야지 하는 생각에. 하지만 제가 중졸이니까 받아주는 곳도 없고···.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공사판밖에 없었습니다."
김 씨는 매일 새벽 인력시장에 나갔다. 하지만 작고 마른 김 씨를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하루 일당이 5만 원이었지만 한 달에 절반을 채울 수가 없었다. 겨울철에는 일이 없어 집에 있는 날이 더 많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에게 줄 급식비가 없어 아침에는 일찍 집을 나왔다. 자신을 원망하더라도 줄 수 있는 것이 없고, 미안했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게 곁을 지켜주는 것뿐이잖아요. 먹고 싶다는 만두와 요플레, 우거지탕을 사다 주지만 모두 토해버립니다. 절 위해 살았고 저만 봤고 저만 의지한 저 사람을 그냥 볼 수밖에 없는 남자의 심정을 어떻게 말로 다 하겠어요. 다시 안정적인 직장을 잡고 싶지만 아내를 지켜줄 여력이 우선은 생겨야지요. 방사선 치료에 항암치료, 식이요법···. 돈 들 때는 너무 많고···."
김 씨는 아직 젊은 나이라 기초생활수급권자로 등록이 되지 않았다. 지원금 30만 원을 받은 것도 아주 최근의 일이다. 작은아들(16)은 특목고에 입학할 수 있을 만큼 공부를 잘 하지만 돈을 낼 형편이 아니어서 포기해야 했다. 고3인 큰아들(18)은 방학 동안 어머니의 병원비를 벌겠다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우리 둘의 고향이 모두 바닷갑니다. 아내가 아프지 않았을 때, 우리는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때, 주말이면 종종 낚시를 갔지요. 아내는 바다를 함께 바라보며 텐트를 치고 매운탕을 해먹었던 그때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합니다. 아내에게 어서 빨리 나아 바닷가로 가자고 약속했지요."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