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단상] 위조지폐와 승부사

입력 2007-08-23 16:25:23

"이거 얼마예요?" 채 오픈도 하지 않은 액세서리가게, 막 물건을 진열하고 있는데 손님이 왔습니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 첫 출발의 징조가 좋습니다. "오 위안" 거의 원가에 가까운 가격입니다. "어머, 너무 싸다" 호들갑을 떨며 이것저것 몇 개를 더 고릅니다. "전부 얼마예요?" "삼십오 위안" "그럼, 포장해주세요" 깔끔한 흥정입니다.

신이 났습니다. 백화점에서도 물건 값을 깎는 곳이 중국이고 보면 오늘은 일진이 좋은 날입니다. 포장삼매경에 빠진 주인을 보던 손님, 손가방을 뒤적거려 백 위안짜리 지폐를 꺼냅니다. "잔돈이 없어서…."

돈의 실체를 포착한 주인이 솔개 병아리 채듯 지폐를 낚아챕니다. 감개무량합니다. 은퇴 후 처음 시작한 장사라 불안이 반이었습니다. 부랴부랴 65위안의 거스름돈을 찾습니다. 호주머니랑 지갑을 뒤져보지만 잔돈이 없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요" 쏜살같이 옆 가게로 뛰어갑니다. 순간 당황해하는 손님, 낭패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고른 물건을 팽개치고는 어물쩍 뒷걸음질을 치다가 총총히 사라집니다.

"큰 공부했다고 생각해요" 허탈해하는 주인의 등을 다독거리는 이웃들, 그나마 도둑질을 겸업하지 않는 사기전문가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위로합니다. '액땜이라 생각하자, 좋은 게 좋다'

마음 연 덕분인지 가게도 순조롭고 장사재미도 제법 쏠쏠합니다. 위조지폐도 금방 식별하는 베테랑이 됩니다. 그 무렵입니다. 왠지 낯익은 손님 한 사람이 가게를 찾습니다. 아무 말 없이 머리 핀 한 개를 고르더니 백 위안짜리를 내밉니다. 주인, 숙련된 솜씨로 지폐의 앞뒷면을 뒤집어 가며 마오쩌둥의 초상화랑 은색 선을 살핍니다. 진짜가 분명합니다. 거스름돈을 세는 동안 손님이 물건을 더 고릅니다. "이것까지 합쳐서 얼마예요?" "예, 45위안입니다" "너무 비싸요, 20위안에 주세요." 터무니없는 가격에 흥정은 깨어지고 백 위안은 다시 손님에게 환수됩니다. 그때 구매를 포기할 것 같던 손님, 마지막 집착을 보입니다. "35위안!" 본전치기라도 팔아야 남는 게 장사라. 물건과 거스름돈을 건넨 주인은 백 위안을 다시 받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손님 사라진 쪽을 향해 멀거니 서있던 주인, 이상한 예감에 정신이 퍼뜩 듭니다. 아! 본 듯한 인상, 바로 첫날의 그녀였습니다. 급히 손에 든 지폐를 살핍니다. '아뿔싸!' 첫 번째 준 지폐는 분명히 진짜였는데, 지금 손안의 지폐는 가짜입니다. 승부사! 가져갔다가 다시 주는 사이에 위조지폐로 바꿔치기 한 것입니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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