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골수성 백혈병 앓는 김인환씨

입력 2007-08-22 09:12:37

급성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김인환(가명·48) 씨는 어떻게 해서라도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급성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김인환(가명·48) 씨는 어떻게 해서라도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역시 가난은 죄가 됐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남은 것은 병마뿐.

21일 오전 경북대병원에서 만난 김인환(가명·48) 씨가 그랬다.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멍자국만 가득한 가슴팍을 힘겹게 두드렸다. 그 힘겨움속에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핏줄을 한 울타리에서 지켜내지 못한 죄책감, 뿔뿔이 흩어져 버린 자식과 아내를 향한 그리움만 가득 묻어났다.

그는 급성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다.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머리카락은 한 올도 없었고, 심한 딸꾹질과 함께 본디 하얀 피부는 어딜가고 까만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자주 차다며 말 몇 마디도 제대로 잇기 힘들어 했다.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힘을 줘야해 눈이 충혈되고, 환자 가운 사이로 언뜻 비치는 가슴은 숱한 바늘 자국으로 멍이 들어 시퍼렇게 보이기도 했다.

"가슴이 답답한 것은 항암치료 후유증이 아니라 제 마음 탓이겠지요. 지난날을 주워 담고 싶은 욕심으로 마음을 다잡아 다시 한 번 제대로 살아보자고 결심했는데…. 내게 남겨진 시간이 다했나봐요…."

지난 2월 공사판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던 김 씨는 아들(23)의 등록금 마련을 위해 벽돌을 날랐다. 이를 너무 꽉 다문 나머지 오른쪽 이가 모두 으스러졌고 잇몸에서 피가 새어나왔다. 이 피는 며칠째 멈추지 않았고 사소하게 난 상처들도 제대로 아물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그는 백혈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 막막하데요. 틀어지고 꼬인 일이 조금 풀린다 싶으면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되고…. 이젠 끝나겠지 했지만 도저히 헤쳐나올 수 없는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젠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1996년,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모은 돈으로 경북 의성에서 한정식집 공사를 시작했다. 5가족의 꿈이 온통 담긴 출발이었지만, 먼 친척이었던 공사업자가 부도를 내고 잠적하면서 불행이 시작됐다. 집을 담보로 은행과 친구들로부터 돈을 빌려 겨우 공사를 끝내고 개업을 했지만 두달 만에 큰 교통사고가 났다. 그해 겨울 새벽, 아내와 함께 퇴근을 하다 음주운전으로 중앙선을 침범한 차량과 정면으로 충돌해 아내와 함께 크게 다쳤고, 치료때문에 몇 개월간 자리를 비운 사이 식당은 풍비박산이 났다. 그리고 외환위기를 맞았다.

"불어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눈을 시퍼렇게 뜨고도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참 살 방법이 보이지 않데요. 버틸 재간이 없다 보니 아내와 자식들에게 못난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두 아이를 데리고 떠났고 저는 큰아들을 데리고 살고···."

그는 부엌도 화장실도 없는 사글세 60만 원의 작은 방 한칸에서 약을 먹고 누워있는 것이 일상이 됐다. 자신에게 이식할 수 있는 골수를 찾았지만 수술비가 4천만 원이 넘게 들어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대학에 다니는 아들은 아버지의 수술비를 마련한다며 온갖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아비 구실을 제대로 하려면 살아야하는데….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을 해서라도 가족을 되찾고 싶습니다. 따뜻하고 행복했던 기억이 있기에, 아들이 제 손을 꼭 잡아주니까 이렇게 살고 싶은 거겠죠."

그는 달랑 신분증만 들어있는 반지갑을 열어 다섯 가족이 환하게 웃고 있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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