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정의 독서일기] 압록강은 흐른다/ 이미륵

입력 2007-08-16 17:06:04

오늘도 압록강은 흐를 것이다. 그러나 어제의 강물은 오늘의 강물이 아닐 것이다. 강은 그 강이로되 매순간 물은 흘러가 버리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생이든 한 나라의 역사든 흘러가는 것들은 불가역적이다. 세월의 흐름과 역사의 격랑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 책은 역사의 격변기 거친 물결에 떠밀려 먼 타국까지 흘러 들어간 한 소년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1946년 독일에서 독일어로 출판된 책이다. 책에 대한 서평이 유럽신문에만 무려 1백여 편이 실릴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이 책으로 인해 저자는'한국최초의 문화대사'라는 찬사까지 듣게 된다.

마치 한편의 동화처럼 개운하고 맑다. 특히 문장이 간결하고 담백하다. 그 담백함 속에 고귀한 기품마저 서려있다. '온실'같은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이 거친 세월을 겪으면 대체로 무디어지거나 과장되어지기 쉬운 법인데, 이 책은 한 소년의 내면이 조금도 퇴색되거나 훼손되지 않고 본래의 순수함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어설픈 '향수'도 흔해빠진 '애국'이야기도 아니다. 그 어떤 격랑에 떠밀려도 결코 자신의 '뿌리'를 놓치지 않은 자만이 쓸 수 있는 단단한 글이다.

해주의 부잣집 외아들로 태어난 미륵은 아버지에게 한시를 배우고 서당에서 학문을 익힌다.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사촌 수암과 어울려 풍요로운 어린시절을 보내지만 개화의 물결이 밀려들자 아버지는 미륵을 신식학교에 보낸다. 동양과 서양, 옛것과 새것, 한학과 신학문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도 하던 미륵은 여러 동무들의 도움으로 새 학문을 열심히 배운다. 일본 군대가 몰려들어오고 세태가 어지러워지자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던 그는 서울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1919년 3. 1 운동에 연루된 미륵은 일경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고향과 어머니를 등지고 압록강을 건넌다.

책 속엔 그 시절의 풍속이 수채화처럼 그려져 있다. 저녁연기가 피어오를 때면 마을에는 아름답고 성스러운 음악이 울려 퍼진다. 관에서 들려주는 그 음악은 고을 원님의 저녁 인사다. 어스름이 깔리면 종지기는 성벽에 올라가 종루에서 종을 치고 산봉우리에서는 봉화가 올랐다. 백성들이 편안하다는 것을 왕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달빛 환한 밤이면 살구나무 아래에 자리를 깔고 아버지와 바둑을 두고 시를 짓던 소년 미륵. 드물고도 아름다운 정경이다.

미륵은 중국을 거쳐 독일로 갔다. 독일도 우리나라처럼 전후에 분단되었다. 미륵이 정착하였던 나라 독일이 연합군에게 점령당해 분단된 것은 어쩌면 전쟁을 일으킨 그들의 업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한반도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마치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죄를 대신 받듯, 미. 소 군에게 점령당했고,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그래서 동족상잔의 6.25도 겪었다. 어쩌면 이것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과 침략에서 비롯된 비극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90년, 41년 만에 독일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루었다. 이제 지구상에서 분단 국가는 우리나라 뿐이다. 세월도 역사도 흐르는 강물처럼 돌이킬 수 없다지만 반성할 수는 있다. 반성은 흐름의 방향을 새롭게 바꾸는 힘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일본은 일말의 미안함은커녕 '위안부' 문제조차 여전히 '눈 가리고 아웅'하려 한다.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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