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컴퓨터 그래픽

입력 2007-08-16 16:46:13

최근 영화 '디 워'가 개봉하면서 컴퓨터 그래픽에 대한 관심도 한껏 높아졌다. 영화 '디 워'(D-War)에는 무려 3천800여컷의 컴퓨터그래픽 장면이 사용됐다. 함께 개봉한 '트랜스포머'나 피터 잭슨 감독의 명작 '반지의 제왕'에 비해 다소 못미치는 면이 있다해도 100% '토종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는다. '디 워'의 스태프들도 최고의 장면으로 꼽는 부분은 바로 '타워 신'. 악의 화신인 이무기 부라퀴가 LA 도심에 등장해 US뱅크타워 속으로 몸을 피한 주인공 이든(제이슨 베어 분)과 세라(아만다 브룩스 분)를 찾아나서는 장면.

200m에 이르는 거대한 몸통으로 타워를 부셔버릴 듯 기어 올라가는 장면은 포스터에서 사용될 만큼 완성도 높은 부분이다. 80%가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됐지만 실제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만큼 매끄럽게 연결됐다는 찬사를 받았다. LA 도심 전투 장면에 나오는 에이브러햄 탱크와 장갑차, 지프는 걸프전에서 사용됐던 실물 장비인데 비해 하늘을 누비는 아파치 헬기는 컴퓨터그래픽의 창조물이다. 무엇이 실물이고, 무엇이 그래픽인지조차 헷갈릴만큼 정교하다. 마지막 명장면은 '신전 신'. 여의주를 놓고 벌이는 사투에서 미니어쳐 세트가 사용됐지만 그래픽의 역할이 크다. 특히 건물이 무너지면서, 기와장이 산산조각 나는 장면은 마치 실제 건물을 폭파한 것처럼 생동감이 묻어난다. 파편 하나 하나에 질감을 더해서 생긴 효과다.

◇ 인간과 컴퓨터그래픽의 만남

로봇이나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으레 컴퓨터그래픽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 사람처럼 표정과 동작의 미세한 부분까지 재현한 캐릭터를 보면 "정말 저것도 그래픽이야?"하는 의문이 든다. 그런 대표적 캐릭터가 바로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골룸이다. 절대반지를 없애이기 위해 모르도르로 떠난 프로도 일행을 안내하는 골룸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내면 의식을 드러내는 고도의 연기를 펼치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스미골과 골룸 사이에서 분열증적 증세를 보이는 장면에서의 미세한 표정변화는 섬찟한 느낌을 줄 정도.

전혀 다른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킹콩 역시 인간 못잖은 감수성 풍부한 연기를 선보였다. 골룸과 킹콩의 공통 요소는 배우 앤디 서키스. 그의 얼굴은 영화 속에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 그의 동작과 얼굴 근육 움직임은 골룸과 킹콩을 통해 고스란히 재현됐다. 서키스는 온몸과 얼굴에 100여개가 넘는 마커(marker)를 부착한 채 모션캡쳐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했고, 그 신호는 컴퓨터로 전송돼 3차원 디지털 캐릭터로 탄생했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이른바 '문어 선장'으로 불리는 블랙펄호의 선장 데비 존스도 배우 빌 나이가 연기한 것. 블랙펄의 다른 선원들도 이런 식의 모션캡쳐 작업을 통해 인간의 표정과 동작이 컴퓨터그래픽으로 환원돼 탄생한 캐릭터들이다.

◇ 경이적인 군중 신

군중 신, 즉 몹 신(mob scene)은 컴퓨터그래픽이 창조한 또 하나의 선물이다. 실제로 수만 명의 배우를 동원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또 그런 배우들이 그래픽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도 없다. '반지의 제왕'이 놀라울 수 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이 군중 신에 있다. 2편 '두개의 탑'에서 대미를 장식한 헬름 협곡의 전투에는 디지털 캐릭터 1만 명이 등장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오르크와 우르크하이 군사들은 관객들을 흥분시켰고, 동쪽 언덕에서 마법사 간달프와 함께 나타난 수천 명의 로한의 기병대는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하지만 피터 잭슨 감독조차 "헬름 협곡의 전투 장면은 3편 '왕의 귀환'의 하이라이트인 펠렌노르 전투에 비해면 미니어처에 불과했다."고 말할 정도로 곤도르 왕국의 수도 미나스 티리스 앞에서 펼쳐진 펠렌노르 전투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압권이자 그래픽의 승리였다.

이런 몹 신에서 중요한 것은 캐릭터 각각의 움직임. 기존 영화들은 한 무리의 군중을 찍은 뒤 이를 다시 복사하는, 다소 조악한 방법으로 군중의 숫자를 늘렸다. 결국 캐릭터 수만 많아졌을 뿐 표정과 움직임은 똑같을 수 밖에 없었다. 펠렌노르 전투 장면은 기존의 이런 통념을 깨버렸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각각의 병사가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서 따로 움직이도록 제어했고, 다른 군사들의 행동에 자연스레 대응하도록 프로그램됐다. 결국 헬름 협곡 전투에서 수많은 오르크와 우르크하이들은 마치 살아있는 야수처럼 위협적인 느낌을 줬고, 펠렌노르 전투에서는 인간과 괴물, 투석기가 난무하는 극적인 상황을 연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 어떻게 만들어지나

컴퓨터 그래픽은 먼저 2차원 밑그림을 그리는데서 시작한다. 기획 회의를 통해 성별, 연령대, 복장, 무기, 표정 등을 개발한 뒤 수십 차례 수정하는 작업을 거친다. 이렇게 주인공이 탄생하고, 이들이 활약하는 가상의 공간과 상대하는 적(몬스터)들이 만들어진다. 여기까지는 흔히 보는 만화책 속의 캐릭터들을 생산해내는 것과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다음 단계는 3차원 입체화면으로 만드는 것. 2차원 밑그림에서 보여지는 전'후'좌'우 및 위'아래 모습을 토대로 입체화 작업이 이뤄진다. 실제 플라스틱 모델로 만들어지지만 않았을 뿐 화면 상에 보이는 3차원 캐릭터는 완벽한 입체 영상이다. 배경을 만드는 작업도 마찬가지. 마치 입체도형을 잇따라 붙여놓은 모양의 밑그림이 우선 그려진다. 가령 거대한 성을 배경으로 만든다면, 처음 작업은 수십 또는 수백개의 원기둥, 사각기둥, 원뿔 등 입체 도형이 늘어선 입체 설계도를 만드는데서 시작한다. 여기에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집어넣고, 거칠고 조잡한 테두리나 벽면을 부드럽게 만드는 작업이 더해진다. 마지막으로 그림자 효과가 더해진 벽돌이나 횃불, 흐르는 물 등을 보태서 입체 배경을 완성하게 된다.

3차원 캐릭터와 배경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 모션 작업. 게이머의 키보드 조작에 따라 뛰어오르거나 구르고, 활을 쏘거나 칼을 휘두르는 동작들이 만들어진다. 엘소드의 경우, 주인공 캐릭터 3명에게 주어진 모션만 60~90여 가지에 이른다. 여기에는 쉬면서 땀을 닦는 장면, 환하게 웃거나 적의 공격에 쓰러지는 장면 등도 포함된다. 수레를 밀고 한두 걸음 옮기는 작업을 모션으로 만들어내는데만 반나절이 꼬박 걸린다. 정교함과의 싸움이다. 실제 사람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도록 만드는 모션캡쳐(motion capture)와 프로그램 발달로 요즘에는 모션 디자이너가 컴퓨터상에서 거의 모든 동작을 구현해 낼 수 있다.

가령 주인공이 뒤로 점프하면서 착지와 동시에 활을 쏘는 장면의 경우 손과 발, 몸통의 미세한 움직임은물론 머리카락의 찰랑거림까지 마치 실제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만들어 낸다. 이 작업은 영화 '토이스토리'나 '슈렉'의 주인공들이 움직이는 장면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매 프레임마다 손, 발, 표정, 무기 등의 조금씩 움직여서 저장하고, 이런 프레임 수백 개가 한꺼번에 이어지면서 마치 살아있는 듯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