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세상] 해변의 여인

입력 2007-08-09 16:57:32

홍상수 감독은 자신이 철학을 하는지 모르는 철학자이다. 아이처럼 순수하게 한 세계들을 만들어가지만 그가 만든 세상은 몇몇 철학자들이 평생을 걸고 싸워 온 관념이기도 하다. 그에게 삶은 그 자체로 관념의 대상이고 철학의 덫이다. 일상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에는 세상과 쉽게 타협하지 않겠다는 객관성이 자리 잡고 있다. 닮은 두 여인과 '나'를 통해 새로운 삼각관계를 구축한 '해변의 여인'도 그렇다.

영화 감독 '중래'(김승우)는 새로운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위해 미술감독에게 무조건 여행을 떠나자고 조른다. 미술감독 창욱은 애인을 동반하겠다는 조건으로 중래의 부탁에 수긍한다. 두 남자와 한 남자의 애인으로 시작된 여행은 애초부터 가능한 6가지의 경우의 수 내부에서 좌충우돌 오간다.

'해변의 여인'은 여러모로 그의 전작 '생활의 발견'을 떠올리게 한다. 일단 두 여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감독으로 지칭되는 남자 주인공이 여행을 떠난다. 바보같이 어리숙한 후배가 여정에 동참하고 원래 후배와 관련 있던 여자는 뜻밖에도 '그' 감독과 연루된다. 여기까지, 대략의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분명 '해변의 여인'은 '생활의 발견'과 닮아있다. 분명히 닮아있지만, '여성'을 보는 입장과 태도에 있어서 '해변의 여인'은 한 걸음 정도 옮긴 다른 족적을 보여준다.

'생활의 발견'에서와 마찬가지로 남자는 한 여자의 두 가지 판본 사이에서 갈등한다. '생활의 발견'이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와 자신을 사랑했던 여자의 동일성과 모순을 그려냈다면 '해변의 여인'은 어제까지 사랑했던 여자가 오늘 싫어지는 에로스의 심리경제학을 조명한다. 실상, 두 영화에서 그려진 닮은 여자 혹은 완전히 다른 여자는 한 여자의 것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다. 다만 그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가 달라졌을 뿐. 마음이 변하자 사람이 달라 보이는 것이다.

그토록 원했던 그 여자는, 하루 밤이 지나자 지겨운 골칫거리로 돌변한다. 헌사를 퍼부었던 여신인데 이제는 남자가 묵고 있는 방 앞에서 주정하는 행태를 보인다. 남자는 그녀가 자신이 원했던 바로 그 여자가 아님을 스스로에게 설교한다. 여자의 과거, 현재, 미래가 총동원 돼 어제 그 완벽했던 여신은 탈신성화 되고 세속화된다. 하지만, 남자는 그녀와 닮은 또 다른 여자에게 매료된다. 내 품안에 안기는 순간 후광을 잃고 매력을 잃어버리는 그녀, 어쩌면 그것은 모든 사랑의 속내이자 비밀일 수도 있다.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장면은 욕망의 아수라장 같은 이틀을 정리하는 쪽이 중래가 아닌 문숙이라는 사실이다. '생활의 발견'의 남자가 두 여자사이의 방황을 회전문 고사를 떠올리며 끝낸다면, 문숙은 집착으로 점철되었던 이틀 밤을 스스로 종결한다. 수형도와 도식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개념화하고 선입견을 강화하고자 하는 중래와 달리 문숙은 감정의 끝까지 가봄으로써 성큼 헤어 나올 용기를 얻는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모래밭에 문숙의 자동차 바퀴가 파묻혔다 빠져나오는 장면은 그래서 오래도록 기억될 상징으로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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