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부동산 가격이 안정세로 돌아섰다는 의견이 다수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뛰어오른 집값 때문에 신혼집 마련을 놓고 예비부부들의 갈등이 커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신랑쪽의 형편이 넉넉해 부모님이 대신 집을 마련해 주는 경우에는 수월하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여자쪽과 남자쪽이 서로 얼마만큼의 비용을 부담하느냐의 문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그남자 이야기
장가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요즘 여자들은 왜 그렇게 눈만 높은 건지. 선을 봐서 4개월 교제 끝에 결혼을 하기로 했지만 돈 문제 때문에 결국 결혼이 깨지고 말았다.
화근이 됐던 것은 신혼집 마련 문제였다. 은행에 다녔던 그녀는 처갓집이 가까운 시지에 30평대 아파트를 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말이 쉽지 30평대 아파트가 애 이름인가? 1억3천에 달하는 전세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은행대출도 알아봤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고작 2년 밖에 안 된 탓에 빌릴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자도 무시하지 못할 일이었다. 4천만 원을 대출 받으면 이자만 40여만 원. 쥐꼬리만 한 월급쟁이 봉급에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처음엔 그녀를 설득하려 애써봤다. 20평대의 아파트에서 시작해 둘이 맞벌이를 하면 몇 년 안에 좀 더 큰 평수의 아파트로 옮길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주위 친구들은 다 30평형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는데 자신만 처질 수 없다며 노골적으로 신경질을 부렸다. 부모님께 가서 떼를 써 보라고도 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며 한평생 고생해서 모으신 노후자금까지 내 놓으라는 말이 선뜻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갈등이 계속되며 둘은 서로 지쳐갔고, 결국은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을 꺼내고 말았다. 잠시 표정이 굳는 듯 하더니 그녀 역시 선선히 동의했다. '우린 서로 안 맞는 것 같아."
△그여자 이야기
이제 결혼식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2달. 3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식을 치르기로 했지만 '식'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비시댁과 친정 사이에서 새우등이 터지다 못해 가슴이 터져버릴 지경이다.
요즘 취업문은 왜 그리 높은지. 남자친구는 취직 재수생이었다. 올해 겨우 모 대기업 공채에 합격해 이제 겨우 '수습'딱지를 뗐다. 그러다보니 돈을 모을 여유가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 결혼비용 전부를 부모님께 의지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시댁에서 제시한 신혼집 마련 비용은 고작 4천만 원. 그 이상은 못 내놓겠다고 선을 그었다. 요즘 세상에 4천만 원으로 마련할 수 있는 집이 어디 있을까? 원룸을 얻지 않는 이상 아파트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금액이었다.
결국 부모님께 염치 불구하고 손을 벌려 2천만 원을 더 보태 화원에 25평 아파트 전세를 얻기로 합의했다. 신랑 직장에서 거리가 좀 떨어지긴 했지만 예산에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부모님 얼굴을 뵐 면목이 없다. 아버지는 "뭐 하나 부족한 것 없는 딸자식 시집보내는데 혼수에 예단도 모자라 집 마련 비용까지 보태줘가며 시집보내야 하냐."며 몇 날 며칠을 술을 드셨다.
나부터도 기분이 좀 상한다. 집값이 워낙 비싸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4천만 원이라는 것은 좀 납득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예비시댁의 형편이 그리 어려운 집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가 기본 상식이 아니던가? 친구들은 다 그렇게 시집을 가던데 왠지 내가 밑지고 하는 결혼이란 생각에 기분이 찝찝해져 온다.
△우린 이상이 달라!
신혼집 마련 문제로 갈등이 불거지는 것은 서로 다른 눈높이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보편적인 결혼 공식이 깨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결혼적령기의 여성들은 남자 쪽에서 집을 마련해 주길 기대하고, 이렇게 해야 잘 한 결혼이라고 믿고 있는 것.
하지만 남자들은 생각이 다르다. 결혼할 때 여자쪽에서도 집 장만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남성이 상당수.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래와 재혼정보회사 온리 유가 지난달 초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36.4%가 '70대 30 의 비율로 여성도 집 장만 비용을 함께 부담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에 반해 여성들은 '남자가 장만해야 한다'는 응답이 29.4%로 가장 많았다.
신혼집 예산에 있어서도 남녀는 큰 차이를 보였다. 남성은 '1억원 이내'라는 응답이 23.2%로 가장 높았고, 2억원(21.8%) 1.5억원(19.1%)의 순이었지만, 여자는 3억원이라는 응답이 27.8%로 가장 비중이 높았으며 다음으로는 5억원(23.6%), 1억원 이내(19.8%)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2억원이라는 큰 격차를 드러낸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남성들은 자신보다 더 나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 남부럽지 않게 인생을 살아가고픈 여성들의 '과시욕'을 꼬집었다. 미혼인 강상구(가명'30) 씨는 "욕심을 조금만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행복한 결혼준비가 될 것"이라고 푸념했다.
△과시욕과 현실사이
"왜 꼭 넓은 아파트를 고집하나? 옛날에 우리 신혼 때는 단칸방에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나이 지긋한 세대들은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며 이런 호통을 치기도 하지만, 젊은 세대들도 할 말이 있다. 예전에야 '작은 평수에서 시작해 꼬박꼬박 저축해가며 평수를 늘려가는 것도 결혼의 재미'라고 했지만, 연봉과 아파트 가격의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면서 이제는 '꿈같은 이야기'가 돼 버린 것. 월급 저축해 집 마련하길 기다렸다가는 평생 제 집 한번 가져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보니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은 처음부터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길 기대한다. 서원철(33) 씨는 "직장 생활 4년 동안 매달 80만원씩 월급의 3분의 2를 저축해 4천만원을 모았지만 그 동안 집값 역시 수천만 원이 뛰었다."며 "부모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탄탄한 기반 위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평생 그 모양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우리 사회 아니냐."고 반문했다.
취업난으로 남성들이 첫 직장을 가지는 시기가 30세에 가까워진 것도 이런 신혼집 문제를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취직해서 장가가기까지 돈을 저축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부모님의 부담이 더 커질 수 밖에 없어진 것. 결혼을 30대 중반 이후로 늦추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고, 모아놓은 돈은 없고…. 이래저래 힘든 것이 요즘 세상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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