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편이 되어 주세요 그렇지만 지나치면 안돼요
'말 안 듣는 아이 어떻게 해야 하지?'
아이가 부모의 뜻대로 움직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렇다고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날 때마다 잔소리를 하고 매를 드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대화로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지혜로운 부모다. 박중규 대구대 교수의 도움으로 '말 안 듣는 아이'의 유형과 대처방법을 실제 상담사례를 통해 알아봤다.
▶동생과 다른 아이를 때려요
초등학교 4학년인 기철이는 두 살 아래인 여동생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서 자주 때렸다. 얼굴에 상처가 나거나 몸에 멍이 들 정도였다. 학교에서도 다른 아이들과 자주 싸워서 사나운 아이로 통했다. 선생님이나 부모에게 벌을 받을 때면 씩씩거리면서 분한 표정을 지었다. 쉽게 화를 내고 짜증도 잘 냈다. 소아정신과병원에서는 '반항성 장애' 진단을 내렸다.
→대처법:부모가 주로 사용한 방법은 훈계와 체벌, 집에서 내쫓겠다는 협박이었다. 하지만 기철이의 사나움은 변하지 않았고 기철이 아버지는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은 엄마 탓이다."며 흥분했다. 하지만 부모에게 원인이 있기보다는 아이의 타고난 기질과 부모의 양육방식, 기철이가 성장해 온 주변 환경 등이 상호작용해 문제가 형성된 것이다. 미운 행동만 보지 말고 받아줄 것은 받아주고 제지할 것은 제지시키는 일관된 대처를 해야 한다. 부모는 예전처럼 윽박지르고 야단을 쳐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쉬운 것부터 정해 지킬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꾸준히 계속했다. 잘 하면 칭찬하고 상을 주자 기철이도 점점 순한 아이가 되어갔다.
▶아이가 산만해요
초등학교 1학년 희영이는 성격이 밝고 활동적이고 낙천적인 반면 호기심이 많아서 어른들이 대화할 때 꼭 끼어들어서 귀찮게 하곤 했다. 조심성이 없고 자기 물건을 잘 잃어버렸는데 학교에 진학해서는 알림장을 적어오지 못하거나 자기가 챙겨야 할 준비물을 일일이 엄마가 챙겨줘야 했다. 아무리 단단히 일러주고 준비를 시켜도 매번 잘 챙기라는 말을 듣지 않아 부모는 속상했다.
→대처법:부모는 희영이가 왜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부모가 주의를 주거나 야단을 치면 희영이는 잘못을 뉘우치는 듯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전문기관에서 심리검사 등을 실시한 결과, 주의력결핍과잉활동장애(ADHD)에 해당됐다. 소아정신과병원에서 주는 주의력 산만을 완화시켜주는 전문치료제를 투약하는 동시에 아이의 말 안 듣는 행동이 어떤 나쁜 의도 때문이거나 다른 아이들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부모가 깨닫게 됐다. 희영이는 부모의 격려와 도움을 받으면서 좋은 행동습관을 키우고 있다.
▶놀기만 해요
중학교 2학년인 영호는 아직도 초등학생처럼 놀기만 하려고 한다. 혼자서 하는 법이 없고 공부도 시켜야만 간신히 숙제를 할 정도다. 당연히 성적은 하위권이었으며, 매사에 행동이 어렸다. 부모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영호는 아직도 엄마와 자겠다고 안방으로 건너오곤 한다. 학교에서도 공부에 관심을 거의 갖지 못했으며,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해봤지만 스스로 공부하기보다는 종일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게임만 하려고 했다.
→대처법:영호는 지능지수가 85로 또래에 비해 학업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다. 보통의 아이들이 100 정도의 지능지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해야만 평균 수준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부모에게 과잉보호를 받아온 영호는 늘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독립적으로 하는 습관이 부족했다. 학습클리닉에서 기본적인 학습습관형성을 위해 노력했으며, 심리학을 전공한 개인과외교사가 형처럼 여러 가지 일상사를 지도해줬다. 부모도 영호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격려해줬다. 변화의 속도는 느렸지만 부모의 깊은 애정과 믿음으로 영호는 변했다.
▶기대에 못 미쳐요
고등학교 1학년인 정연이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밥도 잘 먹지 않고 식구들과 같이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반면 고등학교 3학년인 오빠는 공부를 매우 잘했으며, 온 가족의 자랑이었다. 부모는 정연이에게 오빠를 본받으라고 늘 이야기했다. 하지만 정연이는 하위권을 맴도는 성적에 외모에도 자신이 없었다. 늘 풀이 죽어서 다녔고 표정도 어두웠다. 정연이는 점점 집에 들어오기 싫어졌고 부모님이 자기에게 관심을 끊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처법:부모는 정연이가 성적을 잘 받지 못하거나 활달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모두 말 안 듣는 행동으로 받아들였다. 어머니는 정연이의 장점을 찾아보도록 했을 때 "잘하는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차츰 정연이가 요즘 아이들과 달리 겸손하고 차분한 심성의 소유자임을 어머니도 발견하게 됐다. 이제까지 매사에 어머니가 앞서서 정연이를 이끌려고 했지 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마음이 부족했음을 인정하게 됐다. 정연이는 "나도 오빠만큼 잘하고 싶었어. 잘 안 되는 걸 어떡해. 그렇지만 이젠 엄마가 내 편이 될 때도 있어 좋아."라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 전문가 의견 "문제 부모가 문제 자녀 만든다"
▶곽호순 '곽호순병원' 원장=말 안 듣는 아이의 기준이 불확실한 데다 어른이 만든 개념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실체가 모호하다. 하지만 말 안 듣는 아이는 정서적인 문제나 심리적인 문제로 생기는 경우도 많다. 부모가 그런 것을 모르고 지나치면 말 안 듣는 아이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말 안 듣는 아이들 중에는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김정희 한국발달상담연구소 소장=자녀의 문제 행동 뒤에는 반드시 문제 부모가 있다. 문제 부모가 문제 자녀를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은 세 살부터 취학 전까지의 시기가 중요하다. 부모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이 시기에 부모들은 자녀가 요구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면 중·고교 때도 문제가 반드시 일어난다.
▶박중규 대구대 재활심리학과 교수=부모의 말을 잘 듣게 하기 위해서는 말 안 듣는 행동을 줄여주면서 동시에 말 잘 듣는 행동을 길러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부모가 자녀와 함께 노력하면서 작은 진전에도 관심을 갖고 격려를 해야 한다. 심각한 일상생활의 어려움이 있고 자신 및 주변 사람들의 노력만으로 힘들 때는 전문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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