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계高 파이팅!)전문계 선택 성공한 아이들

입력 2007-06-12 07:58:32

우수한 성적…자신감 '쑥쑥'…행복한 학창생활

▲ (위로 부터)대구 서부공고 전자기계과 3학년 박진오 군, 대구 구남여자정보고 이윤미 양.
▲ (위로 부터)대구 서부공고 전자기계과 3학년 박진오 군, 대구 구남여자정보고 이윤미 양.

전문계고를 선택해 우수한 성적과 진로 발견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남녀 학생을 만났다. 성적에 짓눌리던 중학교 때의 모습은 벗어버리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모범생으로, 자신에 찬 10대로 자랐다. 노력의 결과는 성취감으로, 성취감은 다시 노력으로 이어지는 행복한 학창생활을 하고 있었다.

▶전교 학생회장이 됐어요

대구 서부공고에 다니는 박진오(18·전자기계과 3년) 군. 중학교 때 성적을 묻자 쑥스러운 웃음부터 지었다. "반에서 70%(35명 중 20등 중반)쯤 됐을 거예요. 그때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어요. 친구들이랑 노래방, PC방으로 놀러 다니는게 다였죠."

중3이 되자 박 군에게도 진로 선택의 시기가 다가왔다. 부모님의 실망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인문계 진학이 어렵다고 생각한 박 군은 전문계고 진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교에 진학한 후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다짐하면서 공부 습관을 바꿔 나갔다. "중학교 때는 시험 일주일 전에야 하는 둥 마는 둥 공부를 시작했어요. 하지만 고등학교에 와서는 한 달 전부터 시험 공부를 했죠. 시험기간 임박해서는 새벽까지 책을 봤고요." 노력의 결과는 정직했다. 고1 첫 중간고사 성적은 전교 2등. 스스로도 놀랐다. 기말고사 때는 1등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후 학교 시험에서 1학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성적이 올라가니까 나도 하면 되는구나 하는 자신감이 들더군요. 수행평가도 다른 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 싶고, 차츰 휴식 시간과 공부하는 시간을 구분하는 습관도 들게 됐습니다."

성적이 오르자 학교 다니는 게 즐거워졌다.

"기계를 만지는게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요. 실습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기계를 다루다 보면 어느새 수업 종이 쳐요. 중학교 때는 잠만 오던 수업시간이었는데." 현재 CAD(기계 설계)를 전공하고 있는 박 군은 방과후에도 거의 매일 오후 6, 7시까지 남아 선생님으로부터 전공 관련 수업을 듣는다.

2학년 때 전교 부회장을 한 경력을 살려 3학년 때는 전교 회장이 됐다. 중학교 때보다 친구를 사귀는 폭이 넓어졌고 남들을 이끄는 데 자신감도 붙었다. 부모님은 달라진 아들을 한껏 격려했다. 입학 때만 해도 아들이 전문계고에 진학했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려고 했던 부모님들이었다. "요즘엔 지금 네 모습이 훨씬 낫다고 하세요."

박 군은 대학 진학이 목표다. 경북대나 금오공과대에 진학, 나중에 기술 선생님이 되는게 꿈이다. "공고를 나왔다고 해서 모두 기름칠한 기계를 만지는 게 아니에요. 공고를 나와도 얼마든지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전문직종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건축디자이너 꿈을 키워요

대구 구남여자정보고 이윤미(17·인터넷 비즈니스과 2년) 양은 지난달 계명문화대가 레저학부 신설을 기념해 개최한 고교생 영어웅변대회에서 함께 출전한 일반계고 학생들을 제치고 2등을 차지했다. "중학교 때 소극적이던 제 모습을 생각하면 이런 대회 꿈도 못꾸죠."

이 양이 들려주는 중학교 시절은 대체로 평범했다. 수성구 범물여중을 다닌 이 양의 성적은 35명 중 20등가량. 수업 시간에 필기도 열심히 하고 교과서, 자습서를 외워봤지만 성적은 늘 제자리에 머물렀다. 성적 고민으로 상담까지 받아봤지만 나아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당시 선생님은 인문계를 권하셨어요. 거기 가서 잘하면 된다면서요."

하지만 이 양은 인문계에서 뒷줄에 설 바에야 전문계고를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구남여자정보고에 진학해 현재 대구대 초등특수교육과에 다니는 언니의 모습은 결심에 큰 힘을 줬다. 남들이 기피하는 전문계고를 택하고 남부럽지 않게 성장한 큰 딸을 지켜본 부모님은 큰 반대 없이 이 양을 밀어주었다. 중학교 때 나름대로 몸에 붙은 공부습관은 고교 진학 후 즉시 효과를 발휘했다. 첫 중간고사 때부터 1등을 한 것. 인문계에 진학한 친구들은 "거짓말 하지 말라."며 도저히 못 믿겠다고 했다. 그 후 거의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학급 실장도 됐다.

자신감이 붙으면서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중학교 때는 부끄러워서 질문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젠 궁금한 게 있으면 '나를 통해 다른 아이들도 알게 되겠지'라고 생각해요."

중학교 때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조용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등생이 되고 실장이 되자 다른 아이들이 이 양에게 먼저 의견을 물어오기 시작했고, 대체로 그의 의견을 따랐다. 조그맣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갔고 용기가 생겼다.

이 양은 1학년 때 전산관련 자격증을 8개나 땄다. 오후 4, 5시쯤 수업을 마치면 9시까지 학원 수업을 들었다. 요즘은 경북대 건축디자인과를 목표로 수능 준비를 하고 있다. 수학학원 수업이 끝나면 귀가 시간은 어김없이 자정을 넘긴다. 그래도 이 양은 일반계고 학생들보다는 편하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 저와 비슷한 성적의 친구들이 정말 후회해요. 자기들은 아침에 보충수업, 저녁에 야간 자율학습, 심야 학원 수업을 듣고도 독서실에서 새벽까지 또 공부를 해야 한다고, 그런데도 성적은 중간 이하라고 하소연하더군요." 이 양은 "하지만 전문계고라고 해서 얕잡아 보면 안 돼요.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방심하지 말고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