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의 일부일처제

입력 2007-05-31 16:55:44

불륜 드라마는 '일처일부제'를 공격하는 동시에 '일처일부제'에 천착한다. 불륜이라는 말 속에 이미 '일처일부제'가 기준이라는 함의가 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내 크산티페 몰래 소라레테라는 연인을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어느 날 옷을 갈아입다가 몸에 붙어 있는 나뭇잎을 아내에게 들키는 바람에 평생 크산티페에게 쥐여살았다고 한다. 물론 풍문이다. 크산티페는 악처로 소문난 여자지만, 악처 앞에서 소크라테스가 숨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불륜'이라는 도덕적(명분을 갖춘) 비난 앞에 맞설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변했지만 현대 한국에서도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부적절한 관계는 불륜으로 규정된다. 김수현의 '내 남자의 여자'가 '로맨스'가 아니라 '불륜'으로 불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더불어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자신의 '로맨스'에 '불륜'이라는 등급이 매겨지는 것을 싫어한다.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에서 김상중의 애인인 김희애는 불륜으로 시작했지만 결혼, 즉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지위를 원하고 아기를 원한다. 자신들의 사랑에 불륜이 아니라 합법이라는 등급을 부여하고 싶은 것이다. 불륜이 그들만의 로맨스라면 결혼은 사회적 축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륜 드라마는 기존의 '일처일부제'를 무너뜨리고자 시도함과 동시에 새로운 '일처일부제'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이다. 다만 상대가 바뀔 뿐이다. '내 남자의 여자' 에서 준표(김상중)을 놓고, 지수(배종옥)와 화영(김희애)이 벌이는 싸움은 결국 독점(일처일부)을 위한 것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든 문학작품이든 여성 작가들이 말하는 불륜은 대부분 '일처일부제'를 지향한다. 일처다부, 일부다처라는 설정은 드라마에 등장하지 못한다. 주 시청자인 여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주 시청자인 주부들이 '일처일부'를 원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화영이 '셋이 같이 살자'고 했다지만 이는 홧김에 하는 불과하다. 그녀는 준표를 독점하고 싶어한다.

'일처일부'의 가부장적 제도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남성 작가의 문학작품에 많이 드러난다. 많은 주부들이 공감하며 읽었다는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 작)'는 '일처일부제'에 대한 정면공격이다. 이 작품이 '일처다부'라는 형식을 취한 데다 생활을 쏙 빼놓았기 때문에 여성 독자들이 거부감을 덜 느꼈겠지만 그 안에는 평범한 주부들이 결코 들이키고 싶지 않은 독배가 있다. 여러 남편을 거느리려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겠는가. 세상에 공짜로 '세컨드 남편'이 뚝 떨어지겠는가.

소설 '침묵의 집(박범신)'은 가부장적 질서 속에 사는 한 남자의 실종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스스로 실종을 택했다. '일처일부제' 아래 자신에게 드리워진 삶의 무게를 던져버리고 어느 날 사라진 것이다. 작가 김훈은 일전에 '일처일부제는 극악무도한 죄'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인간 본성에 적합하지 않는다는 말이지만, 사실 일처일부제의 가부장적 질서가 남성에 가하는 억압은 생각보다 크다. 전업여성주부는 용인 가능하지만 전업남성주부는 용인 받기 어렵다. 여자 대학생은 '졸업 후 그냥 시집갈래요'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남학생은 그렇게 말하면 욕 많이 먹는다. 남편 실직으로 집안이 파탄 났다는 신문기사는 흔하지만 아내의 실직으로 집안이 망했다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여성작가의 작품에는 여성들이 '일처일부'의 가부장적 질서를 견디다 못해 도망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그녀들이 가는 곳이 어디인가? 결국 그녀들은 한 남자(일처일부)를 찾아간다. 여성이 견디지 못하는 것은 '일처일부'라는 제도가 아니다. 그녀들은 다만 지금 이 남편이 싫은 것이다.

점잖은 사회적 위치를 가진 여성들만 일처일부제를 원하는가? 아니다. 창녀들도 기둥서방이 있다. 이 기둥서방이란 사람들은 창녀가 몸팔아 번 돈을 갈취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창녀에게 기둥서방은 '남편'인 셈이다. 수많은 남자들과 수많은 밤을 외롭지 않게 보내는 창녀들조차 단 하나의 서방을 원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영화 평론가이자 문학 평론가인 강유정씨는 이전에 '여성의 성은 지속성을 원한다. 창녀에게 기둥서방은 그런 측면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속성. 여성은 여러 남자와 여러 날 밤을 보내는 것과 별개로 한 남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세월의 혹독한 검증 속에서도 일처일부제가 흔들리지 않는 것은 결혼만큼은 무한경쟁하지 말자는 사회적 묵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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