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의사 노릇을 하면서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바로 "아기 울음에 질리지도 않느냐?"는 것이다. 특히 한밤중의 갓난아기 울음 때문에 잠이라도 설쳐본 경험이 있는 친구 녀석들은 아예 존경스러움과 측은함이 반반씩 섞인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말한다. 사실 아기의 입장에서 '울음'이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혹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생존본능이자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아기 울음소리에 주파수가 맞춰진 부모들의 뇌'라는 흥미로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즉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친부모들은 생물학적 감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는 아기가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서, 자연스럽게 근심 걱정 같은 감정을 갖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부모가 아닌 사람들은 아기들의 울음소리보다 웃음소리에 더 반응을 보였다. 또 짐작대로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선천적으로 아기 울음소리에 더 예민하게 반응해, '모성본능'의 존재를 새삼 재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에 '아기 울음 번역기'라는 것이 만들어져서, 그 소리를 배고픔, 심심함, 짜증, 졸림, 스트레스 등으로 분석해 알려준다고 하지만, 어디 위대한 모성본능에야 견줄 수가 있겠는가.
요즘 같이 급속한 노령화 사회로 치닫는 것과 맞물려 저 출산 시대에 한숨짓는 시절이라, 아기 울음소리는 마을 잔치판을 벌일 만큼 제법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사실 소아과 의사 처지에서도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만큼 마음이 놓이고 반가운 것은 없다. 물론 소아과 환자가 늘어난다는 단순하고도 속보이는 기대감에서가 아니다. 선천적인 모성본능에야 미치지 못하겠지만, 혹독하게 얻어진 후천적인 소아과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소아과 의사로서 가장 응급한 경우는 바로 분만실에서 아기가 첫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 것이다. 만사를 제쳐 두고서 분만실로 허겁지겁 뛰어들 때, 아기 울음소리가 얼마나 큰 안도의 축복인지! 그리고 가장 곤혹스러운 것도 응급실이나 병실에서 울 힘도, 여유도 없이 아기가 축 처져 있는 경우를 맞닥뜨리는 것이다. 한밤중에 급한 호출을 받고서 지친 몸에 무거운 마음으로 응급실 문을 열 때, 들려오는 우렁찬 아기의 울음처럼 반갑고 고마운 소리는 없으리라. 따지고 보면 아기들의 건강한 울음을 되찾아 주는 것이 소아과 의사로서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자,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과 보람을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오늘도 진료실에서 듣는 사람 속까지 다 후련하도록 시원스럽게 울고 있는 아기들을 보면 문득 부러워진다. 나에게도 언제 저렇게 온 마음과 몸으로 울어본 적이 있었던가? 안으로 일어나는 갖은 회한으로 저 혼자 꺽꺽거리며 울음을 삼키거나, 바깥으로 이런저런 눈치를 보느라 공연히 헛울음이나 터뜨리지나 않았는지 말이다. 그래 아가야, 우렁차게 온몸으로 울어 보아라. 맘껏 울음을 터뜨릴 수 있는 봄날은 짧고, 마음 졸이며 울음조차 삼켜야 하는 삶의 여름은 길고도 뜨겁단다.
송광익(늘푸른소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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