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진급 시험 '공포'

입력 2007-05-23 09:22:15

롯데백화점은 최근 진급 시험 과목에 한국사에다 한자를 집어넣었다. 롯데백화점 이철우 사장이 "국가관 확립과 글로벌 마인드를 갖기 위해서는 역사와 한자 지식이 필수"라고 강조하자, 한국사 시험 및 한자능력 시험을 보기로 한 것.

롯데백화점은 외부의 한국사 및 한자능력시험에 응시, 성적표를 받아오거나 원하는 직원들은 회사에서 직접 시험도 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롯데백화점 대구점 경우, 직원들의 한국사 및 한문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다음달 한국사 및 한자 검정과 관련된 독서 통신 과정을 신설하기로 했다. 이 백화점 직원들은 업무를 마치고, 밤마다 공부를 해야할 상황이다.

입사시험 치르고 회사에 들어오면 시험 공포에서 해방이라고? '아니올시다.' 롯데백화점처럼 상당수 기업이 여전히 진급 시험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일하랴, 진급시험 공부하랴, 주경야독(晝耕夜讀)을 실천하는 봉급쟁이들. 그들의 삶이 고단하다.

◆시험, 장난이 아니다

대구은행에 근무하는 A씨는 '만년 대리' 다. 나이로 보나, 용모로 보나 부장급 용모. 하지만 그는 자동승진이 되는 마지막 직급인 대리에서 직위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시험에서 계속 '미역국을 먹은' 탓이다. 대구은행은 행원으로 입사, 계장과 대리까지는 일정 연도가 지나면 자동으로 승진시켜 주지만 과장 승진에서는 시험에 합격해야 직위를 올려준다. 책임자 자리인 과장부터는 일정 부분의 지식을 반드시 갖춰야 하기 때문에 엄격한 시험을 도입하고 있다고 대구은행은 설명했다.

대구은행에 따르면 현재 약 10명 안팎의 '만년 대리'가 있다. 승진을 시켜주고 싶어도 시험에 합격을 못 하니 '하늘이 두 쪽 나도' 진급이 안 된다는 것이 대구은행의 주장.

대구은행은 수신·여신·외환 업무 등에 관한 지식을 묻는 시험을 치르고 있는데 단번에 합격하는 경우가 20~30%에 불과할 만큼 시험 수준이 높다는 것.

삼성생명도 최근 '대리 진급 재수생'이 부쩍 늘고 있다. 과거엔 재수생이 거의 없었는데 최근 시험이 어려워지면서 이 같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삼성생명에서 대리로 승진하려면 AFP(재무설계사) 자격증을 따야하고, 엑셀·훈민정음·파워포인트를 묶은 e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토익도 520점 이상이 되어야 한다. 이런 종류의 시험에서 합격조건에 들어야 인사고과가 합산돼 대리 진급이 된다.

삼성생명 대구본부 한 관계자는 "과장 진급에서도 토익이나 회화등급에서 일정 성적이 나와야 하는데 승격률이 30%도 안 된다."며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

◆봉급쟁이들, 바쁘다 바빠!

신용보증기금 대구경북본부의 김남수 차장은 퇴근 후 저녁 10시가 넘어서부터 공부를 시작한다. '기획력 향상'이란 주제의 통신강좌를 수강하는 김 차장.

어쩌다 저녁약속이 있어 귀가가 늦으면 주말에 못다한 부분을 해야 한다. 그는 회사에서 연중 '연수성적'을 보기 때문에 통신연수를 계속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신용보증기금은 대리진급 때부터 신용조사·신용보증·채권관리·기본법규·어학 등 시험을 치는데 첫해에 합격하는 비율이 응시자의 절반도 안 될 만큼 어렵다."며 "진급시험 대비를 위해 일이 끝나면 도서관에 가는 직원들이 많고, 직급이 높아져도 계속해서 통신연수 성적을 쌓아둬야 한다."고 했다.

은행 등 금융권은 대부분 시험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금융권이 시험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그만큼 몇몇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필요하기 때문.

대기업들 가운데는 롯데백화점의 사례처럼 '롯데그룹'이 사원들에게 승진 시험을 치르게 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경북지역을 비롯, 전국의 대다수 제조업체들은 고과에다 어학성적 정도만 고려, 진급을 시켜주고 있다. 제조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시험 스트레스는 적은 편. 하지만 최근 '어학 공부 바람'이 워낙 거세게 불면서, 제조업체 직원들의 공부 스트레스도 커지고 있다.

공공부문에서는 상당수의 공사가 여전히 승진시험 제도를 유지 중이고, 대구시청·경북도청 등 자치단체에서는 시험을 치지 않고 인사고과로 승진을 결정한다.

그러나 경찰은 여전히 경정까지 시험을 통해 올라가는 길을 열어놓고 있으며, 시험이 임박하면 밤새워 공부에 매달려야 할 만큼 경찰들의 시험 스트레스도 크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