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난히 '문화'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크게는 동양문화·서양문화로부터 음식문화·관광문화에다가 심지어 쇼핑, 목욕, 죽음에도 문화라는 단어를 갖다 붙인다.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도 한다. 아마도 과거 지나친 경쟁의식 속에서 놓쳐버린 '문화'라는 이름에 대한 미래지향적 환상이나 동경 때문이리라.
왜 모두가 이토록 손에 잡히지도 않는 문화에 주목하고 집착하는 것일까. 하지만 실제로는 '문화가 어떤 것이냐?'고 물으면 정작 그 대답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는 지나간 날의 유산쯤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가진 사람들의 사치쯤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과연 문화란 무엇인가. 좁게는 예술활동이나 흔적으로부터 넓게는 자연에 대립하는 인간활동과 그 산물 모두를 일컫는다. 이를 테면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것을 자연이라 하고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 모두를 문화라고 할 수 있다. 학습과 사회적 전통으로부터 습득하고 전달받은 것을 의미한다.
문화라는 말이 본래 경작이나 재배에서 유래된 점만 보더라도 자연에 인간적 욕구가 보태어진 결과물이나 과정임을 알 수가 있다. 인류의 물질적인 소산을 문명이라고 할 때 문화는 다분히 정신적인 소산이라 하겠다. 따라서 문명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해서 문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새삼스레 문화인가. 문화는 그 나라의 힘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상상력과 창의성이라는 뿌리에서 자라는 나무와 같다. 글로벌 시대의 국가 경쟁력이 독자성과 차별화에 있다고 본다면, 그 차별화의 열쇠는 문화가 쥐고 있다. 다양한 모양의 나무들이 모여서 훌륭한 숲을 이루듯이 아직은 불확실한 생각들이라 할지라도 종내는 그 나라의 자산이며 국력이 아닐 수 없다.
문화는 또한 반찬이기 때문이다. 극도로 배가 고플 때는 아쉬운 대로 밥만 있어도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다. 하지만 조금만 직접적인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면 반찬을 찾게 된다. 그렇다고 밥 없이 반찬만으로는 살 수가 없다. 필요에 따라서 때로는 밥을 조금 더, 때로는 반찬을 조금 더 먹음으로써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지금은 반찬에 대한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다.
무심코 던져놓은 씨앗에서 고목이 자라듯 문화라는 이름의 씨앗을 더 많이 뿌려야 한다. 과거의 배고픈 기억에 집착하느라고 문화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배부른 다음에 문화를 찾는다면 그때는 이미 늦기 때문이다.
민병도(화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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